서울 주요 도심 한강변에 자리한 아크로 브랜드 적용 아파트들. 아크로 홈페이지
DL이앤씨(옛 대림산업)가 하이앤드 주거 브랜드인 '아크로' 브랜드를 경기권까지 확대하고 있다. 아크로는 '상위 0.1%'를 타깃으로 DL이앤씨가 1999년 론칭한 브랜드다. DL이앤씨는 그동안 서울 중심권 중에서도 이른바 한강변에만 해당 브랜드를 집중적으로 적용하면서 가치를 높여왔다. 그런데 DL이앤씨가 수주를 위해 서울 강북권에 이어 경기도 지역에도 아크로를 적용하고 있어 희소성 하락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서울 주요 도심 한강변에 자리한 아크로 브랜드 적용 아파트들. 아크로 홈페이지
아크로 여기저기 끌어오는 DL이앤씨 8일 정비업계와 호계온천지구 재개발 조합에 따르면 경기도 안양 호계온천지구 재개발에 DL이앤씨의 아크로 브랜드가 적용될 전망이다.
호계온천지구 조합 관계자는 7일 본지에 "DL이앤씨에서 잠정적으로 아크로 브랜드를 적용할 수 있다고 답을 준 것은 맞다"며 "내년 1월 총회에서 조합원들의 동의를 거쳐 확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하이앤드인 아크로 브랜드를 달면 고급 자재를 사용하기 때문에 분담금 등에서 부담이 되는 것은 맞다. 만약 총회에서 아크로를 다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면 후분양을 추진해 사업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호계온천지구 조합은 지난 10월 DL이앤씨에 아크로 브랜드 적용을 요구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일반분양가 재심사를 요청해 3.3㎡당 2800만원 이상 일반분양가를 인정받으면 'e편한세상', 2800만원 미만을 받으면 후분양을 추진하는 대신 아크로를 적용해 달라는 내용이다.
DL이앤씨는 지난 3일 호계온천지구 조합 공문을 보내고 "조합원들의 결의를 통해 브랜드 변경을 결정할 경우 그 결과를 수용하기로 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DL이앤씨는 지금까지 경기권 아파트에 아크로 브랜드를 적용한 적이 없다. 마약 호계온천지구가 총회에서 아크로 브랜드를 결정할 경우 국내 첫 경기도에 들어선 아크로 단지가 된다.
앞서 DL이앤씨는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6구역 재건축 사업 입찰에도 아크로 브랜드를 적용하겠다고 들이밀었다. 북가좌6구역은 서대문구 북가좌1동 327-1번지 일대에 1970가구 규모의 공동주택과 부대시설을 짓는 사업이다. 사업비만 5351억원에 달한다. DL이앤씨는 경쟁사였던 롯데건설을 누르고 수주에 성공했다.
서울 주요 도심 한강변에 자리한 아크로 브랜드 적용 아파트들. 아크로 홈페이지
하이앤드 브랜드 홍보비 엄청난데… 아크로는 한국의 대표적인 고급 아파트 브랜드다. 지난달 30일에는 서울 한강변 최고가 아파트 중 하나인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면적 84.9㎡(34평형)가 45억원에 거래되면서 신고가를 새로 썼다. 지난 9월 말 같은 면적 매물(15층)이 42억원에 거래되며 첫 국민평형 40억원을 돌파했는데, 두 달 만에 또 3억원이 오른 것이다.
이미 지어놓은 아크로 브랜드 아파트가 가만히 있어도 비싼 아파트로 유명세를 얻자, DL이앤씨가 하이앤드 브랜드 적용 원칙을 깨고 어지간한 사업장 입찰에도 아크로를 들고나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일단 아크로를 적용하면 조합이 표를 준다는 것이다.
업계는 DL이앤씨가 아크로 브랜드를 경기권이나 강북에도 적용하는 것은 조합의 입김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시공사인 건설사로서는 당장 수주 잔고를 채워 넣어야 하는데, 아크로 브랜드를 달라는 조합의 요구를 마냥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는 것이다.
A 건설사 관계자는 "아무래도 조합에서 하이앤드 브랜드를 원하니, 시공사 입장에서는 공사는 해야 하니까 하이앤드 브랜드를 양보하는 경향이 있다"며 "옛날에야 하이앤드 브랜드가 희소성이 있었지만 요즘에는 대형건설사마다 럭셔리를 지향하면서 경계도 모호해진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 주요 도심 한강변에 자리한 아크로 브랜드 적용 아파트들. 아크로 홈페이지
하이앤드 브랜드는 아파트를 지을 때 최고급 자재는 물론 조경과 커뮤니티 시설 역시 최상의 수준을 지향한다. DL이앤씨의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아크로 역시 '엄격한 기준으로 완성되는 절대우위',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희소가치', '비교할 수 없는 차별화한 주거공간'을 브랜드 아이덴티티라고 설명하고 있다. 당연히 아크로를 적용할 경우 공사 비용이 많이 증가한다.
아크로가 대중화할 경우 결국 짐은 DL이앤씨에 돌아올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B 건설사 관계자는 "하이앤드 브랜드를 굳이 안 만드는 건설사도 있다. 이미 최고급 아파트 브랜드가 있는데, 더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크로는 DL이앤씨가 대림산업이던 시절부터 브랜드를 키워왔다. 홍보와 명성을 얻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언젠가 또 다른 하이앤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같은 노력과 시간을 들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서지영 기자 seo.jiy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