앳된 외모의 신인이라고 얕보다간 매운 맛에 호되게 당한다. 여자배구 AI 페퍼스 박은서(18)가 신인왕 후보로 급부상했다.
박은서는 지난 12일 KGC인삼공사전에서 데뷔 후 아포짓으로 선발 출전했다. 팀의 주포인 엘리자벳이 무릎 통증 때문에 빠져서였다. 윙스파이커로 교체투입돼 두자릿수 득점을 두 차례 올렸지만 선발은 처음. 박은서는 "엄청 긴장했는데 경기 전 언니들과 엘리(자벳)가 장난을 쳐줘서 경기 들어갈 때는 풀렸다"고 떠올렸다.
팀원들의 도움 덕분이었을까. 박은서는 경기 내내 자신감있는 플레이를 했다. 팀 전체 공격 3분의 1을 책임지면서도 43.59%의 공격성공률을 기록하면서 팀내 최다인 17점을 올렸다. 팀은 또다시 지면서 9연패에 빠졌지만, 김형실 감독은 "김연경이 연상된다"면서 흡족해했다.
박은서는 아직 일신여상을 졸업하지 않은 신인이다. 올해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2순위로 지명됐다. 신생팀 페퍼에 온 덕분에 빠르게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고교 때도 맡지 않았던 라이트로 나섰음에도 준수한 모습을 선보였다. 백어택도 9개 중 4개나 성공시켰다.
박은서는 "고등학교 때 레프트로 포지션을 바꿨기 때문에 오래간만이었다. 걱정도 했다. 하지만 공격적인 부분이 잘 된 것 같다. 후위공격 연습도 많이 하지 못했는데 잘 돼서 나도 놀라고, 언니들도 놀란 눈치였다. 다만 서브나 블로킹이 아쉬웠다"고 했다.
박은서의 키는 1m77㎝로 큰 편이 아니다. 하지만 빠른 스윙을 가졌고, 체구에 비해 힘이 좋다. 몸을 날리는 수비도 잘 한다. 리시브만 좀 더 좋아지만 공수를 겸비한 김연경 같은 선수가 될 수 있다. 조용한 성격이지만 코트에선 공격적이다. 박은서는 "그냥 내 앞에 오는 공을 때려야 하는 거니까 자신감 없이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박은서는 태릉선수촌이 낳은 '2세 체육인'이다. 아버지 박우씨는 1998 방콕 아시안게임 레슬링 동메달리스트다. 어머니 어연순씨는 실업리그 시절 도로공사에서 활약했고,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박은서의 동생까지 세 자매가 배구를 하고 있는 건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DNA 덕분이다.
박은서는 "개막전 때 한 번 어머니가 경기를 보셨다. 많은 이야기를 하진 않으셨는데 내가 프로에 있는게 신기하시다고 했다. 동생들은 평소와 똑같다"고 웃었다. 사령탑 김형실 감독은 70대다. 하지만 친밀한 관계를 쌓아가며 선수들을 이끌고 있다. 박은서는 "감독님이 자상하시다. 운동을 안 할 때도 옆에서 말장난도 쳐주고, 분위기를 좋게 만든다. 혼낼 때도 잘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준다"고 했다.
페퍼저축은행은 신생팀이라 신인을 7명이나 뽑았다. 실업리그 출신 큰언니 문슬기를 제외하면 동기만 6명이나 된다. 박은서는 "어렸을 때부터 친한 (박)연화와 (박)사랑이는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다. 단톡방에선 (서)채원이가 제일 말이 많아서 '제발 그만하라'고들 한다. 사랑이가 부상 때문에 경기를 못 뛰었는데 위로보다는 장난을 한 번씩 더 치면서 격려한다"고 전했다.
페퍼저축은행은 개막 5연패 이후 IBK기업은행을 상대로 첫 승을 거뒀다. 하지만 이후 9연패에 빠졌다. 박은서는 "첫 승 때 웜업존에서 응원하고 있었는데 언니들이 너무 잘 해서 '우와, 이기는 거 아니야' 했는데 이겨서 모두 손잡고 뛰어갔다"며 "지금도 이기고 싶다. 연패가 너무 길어지고 있는데 그래도 팀 분위기가 좋다. 한 번 더 이기는 경기가 나오면 더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박은서의 말대로 페퍼저축은행 선수단은 항상 밝다. 젊은 선수들답게 에너지가 넘치고 실수를 해도 서로 웃어주며 다독인다. 김형실 감독도 "기죽지 않고 해주는 게 고맙다"고 한다. 박은서는 "승리도 중요하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게 느껴지고, 내일을 바라보면서 배구를 하고 있다. 언니들도 분위기를 항상 좋게 만들어주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출전시간이 늘어나면서 박은서도 어느덧 신인왕 후보로 꼽히고 있다. 박은서는 신인왕을 받고 싶은 마음을 퍼센티지로 말해달라고 하자 "90%"라고 답했다. 이어 "처음엔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런 이야기가 나오니 욕심이 난다"고 솔직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