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까지 프로팀 인천 유나이티드 전력강화실장으로 활약하다 ‘축구 전도사’로 변신한 이천수(40)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그가 스페인에서 뛸 때 한 팬이 어눌하게 ‘리춘수’로 발음했는데, 입에 착 달라붙어 유행어가 됐다. 지난 4월 개설한 축구 유튜브 채널 이름도 ‘리춘수’. 7개월 만에 구독자 약 13만 명을 달성했다.
최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만난 그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이제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벗어나나 했는데, 그보다 더 숨 막히는 경쟁이 펼쳐지는 곳에 왔다. 축구에선 90분이 있다면, 방송은 10분 안팎의 짧은 시간 안에 시청자를 사로잡아야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축구 천재’로 불렸던 그가 축구 홍보에 나선 것은 올해 대한축구협회 사회공헌위원장을 맡으면서다. 축구 홍보와 저변 확대에 힘을 보태는 직책이다. 협회는 2002 한·일 월드컵 4강 진출 20주년이 되는 내년을 앞두고 당시 대표팀 막내였던 이천수에게 중책을 맡겼다. 이천수는 “유튜브는 10~20대와 소통하는 핫라인이다. 팬데믹 시대 유일한 대화 창구이기도 했다. 축구의 매력을 알리고, 재미있는 프로젝트로 더 많은 팬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유튜브 첫 콘텐트로 심판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파격 행보였다. 선수 시절 이천수는 주심 판정에 자주 불만을 제기했다. 심판과 앙숙이었다. 판정에 항의하다 ‘주먹 감자’를 날려 벌금 800만원 중징계를 받은 적도 있다. 그랬던 그가 5급 심판 자격증(초등학교 8인제)을 취득하는 과정은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필기 시험을 준비하고, 어설픈 동작으로 실기 테스트를 보는 모습에 팬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심판 강의를 듣는 영상은 376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주말에 그는 유소년, 동호인 경기 주심으로 활약 중이다. 이천수는 “심판과 대립각을 세웠던 내가 막상 심판이 되니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판정 하나가 경기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을 동시에 느꼈다. 심판의 고충을 은퇴한 뒤에야 알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스페인과 프리킥 관련 콘텐트를 꼭 만들겠다고 했다. 이천수는 이강인(20·마요르카)에 앞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2003년 레알 소시에다드 입단) 무대를 밟은 최초의 한국 선수다. 2006년 독일 월드컵 토고전에선 환상적인 프리킥 골을 터뜨려 ‘아시아의 베컴’으로 불렸다. 이천수는 “‘천하제일 프리킥 대회’를 열겠다. ‘프리킥 달인’ 데이비드 베컴(은퇴)을 초대해 일대일 승부도 펼치고 싶다. 축구 유망주들과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같은 스페인 명문 구단을 방문하는 것도 목표”라고 했다.
그가 일주일의 절반을 유튜브에 할애한다면, 나머지 절반은 방송 출연으로 보낸다. 최근 SBS 예능 프로 ‘골 때리는 그녀들(골때녀)’에서 감독으로 활약 중이다. ‘골때녀’는 여성 연예인으로 팀을 만들어 풀리그로 우승팀으로 가리는 내용이다. 모델 한혜진, 코미디언 신봉선, 아이돌 가수 원더걸스 출신 유빈 등이 출연했다. 이천수는 지난 9월 40~50대 가수·배우 등으로 이뤄진 ‘FC 불나방’ 지휘봉을 잡아 황선홍, 김병지, 최진철 등이 맡은 팀을 제치고 시즌1 우승을 차지했다. 시즌2에선 국악인 송소회, 래퍼 치타 등이 모인 ‘FC 원더우먼’을 이끌고 있다.
이천수는 “여자 축구는 비인기 종목이다. 예능 형태로 여자 축구를 알리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축알못’이었던 아내의 출연도 권유했다. 축구를 배워가는 과정이 큰 재미와 감동을 줄 거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이천수는 감독으로서 가능성도 발견했다.
그는 “선수들과 합숙하다시피 하며 훈련했다. 축구를 가르쳐서 결과를 내니 선수 때와 다른 희열이 있다. 지금은 한국 23세 이하 대표팀 감독님이 된 (황)선홍이 형과 강원FC 감독이 된 (최)용수 형이 이끄는 팀을 이겨보니 ‘나도 프로팀 감독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이천수는 현재 프로팀 감독 자격이 주어지는 P급 자격증 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축구를 알리려고 시작한 일인데, 내가 더 많이 배웠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결국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은 그라운드다. 그날이 올 때까지 ‘리춘수’의 활약을 지켜봐 달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