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KT 위즈가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린 박병호(35) 영입을 위해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다. 원소속구단 키움 히어로즈도 이를 감지했지만 별다른 대응책이 없어 속앓이 중이다.
현재 프로야구 FA 시장의 최대 화두는 박병호의 거취다. 지난달 25일 FA로 공시된 그는 한 달 넘게 미계약 상태다. 키움과의 잔류 협상이 원활하지 않다. 키움은 고형욱 단장과 허승필 운영팀장이 외국인 선수 물색차 동반 출국해 FA 시장이 개장했을 때 협상 담당자가 한국에 없었다. 고 단장이 지난 7일 박병호와 뒤늦게 처음 만났지만, 안부를 묻는 수준에 그쳤다. 박병호도 대리인 없이 자리에 나올 만큼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고 단장은 “다음 만남은 내년 초가 되지 않을까 싶다. 구단도 시간이 필요하고 박병호 측도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장기전을 예고했다.
첫 만남 때만 해도 박병호의 이적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고액 연봉자인 박병호는 이적에 따른 보상금도 상상을 초월한다. 그와 계약하는 구단은 2021시즌 연봉 15억원의 150%인 22억5000만원을 키움에 보상해야 한다. 2~3년의 계약 기간만 보장해도 총액 50억~60억원을 훌쩍 넘긴다. 보상금 수준이 비슷했던 김현수(LG 트윈스) 김재환(두산 베어스) 등이 FA 잔류를 선택하면서 박병호의 ‘키움 잔류’도 시간문제로 보였다.
기류가 바뀐 건 KT의 관심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다. 내부 FA였던 3루수 황재균, 포수 장성우와 계약한 KT는 외부 FA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이숭용 KT 단장은 지난 27일 황재균 계약 발표 후 “아직 FA 시장에서 철수하지 않았다”고 공언했다. 시장에 남아 있는 즉시 전력감이 박병호와 정훈밖에 없다는 걸 고려하면 박병호 영입 가능성에 힘이 실렸다.
올 시즌 통합우승을 달성한 KT에는 베테랑이 필요하다. 올 시즌 뒤 유한준이 은퇴했기에 박경수와 함께 팀의 중심을 잡아줄 선수를 원한다. 박병호는 유한준이 주로 맡았던 지명타자는 물론이고 1루수 강백호의 출전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대안이다. 공교롭게도 박병호는 박경수와 LG 트윈스에서 한솥밥을 먹었고, 이강철 KT 감독은 넥센 히어로즈 수석코치 출신으로 누구보다 그를 잘 안다. 우승에 목마른 박병호로서도 투타 전력이 안정적인 KT는 매력적인 팀이다.
박병호는 홈런왕을 무려 다섯 번이나 차지한 거포다. 통산 홈런만 327개다. 하지만 최근 두 시즌 연속 개인 성적이 크게 하락했다. 올 시즌에는 리그 타격 최하위(0.227)에 머물렀다. 타석에서의 생산성이 눈에 띌 정도로 떨어져 ‘에이징 커브(일정 나이가 되면 운동능력이 저하되며 기량이 하락하는 현상)’에 대한 우려가 크다.
성적을 떠나 키움은 “박병호 잔류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박병호의 이탈을 예상했다면 외국인 타자로 1루수를 영입했어야 했지만, 외야수 야시엘 푸이그와 계약했다. 팀 내 마땅한 박병호의 대안이 없는 것도 고민거리다.
박병호의 거취를 결정한 핵심은 역시 몸값이다. 모기업이 없는 히어로즈는 2019년부터 5년 동안 키움증권에 네이밍 라이츠(Naming rights, 팀 명에 기업명을 붙이는 권리)를 팔아 그 대가로 연간 100억원씩을 받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관중 수입이 크게 줄어들면서 구단 살림살이가 어려워졌다. 최근 4년 동안 박병호에게 총연봉 65억원을 안기며 대우했으나 이번엔 투자 여유가 많지 않다. FA 시장은 돈의 흐름에 따라 움직인다.
모기업이 탄탄한 KT와의 영입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힘들다. 키움은 구단 내부적으로 박병호 관련 얘기를 조심스러워한다. 그만큼 잔류 협상이 순탄치 않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