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원주 DB 가드 정호영(23)은 ‘저승사자 아들’이라 불린다. 농구 국가대표 출신 아버지 정재근(52)의 별명이 ‘저승사자’였다. 1990년대 연세대와 SBS에서 활약한 정재근은 무표정에 하얀 얼굴로 상대 팀 혼을 쏙 뺐다.
그의 아들 정호영은 ‘농구 DNA’를 물려 받았다. 키 1m92㎝ 정재근은 파워 포워드였는데, 1m87㎝ 정호영은 슈팅 가드다. 신인 정호영은 외곽에서 골 밑으로 쭉 치고 들어가는 스텝과 돌파, 정확한 슛을 빼닮았다. 호쾌한 원핸드 덩크슛을 꽂을 만큼 탄력이 아버지처럼 좋다.
정호영은 30일 “집에서 아버지가 형처럼 잘해주신다. 유튜브로 아버지의 선수 시절 영상을 보니 카리스마 있고 든든하더라. 아버지는 ‘저승사자’라고 불렸는데, 난 마른 편(70㎏)이라 별명이 ‘가시’”라며 “얼굴은 어머니를 닮았고, 드리블과 슛 쏘는 게 아버지 같다더라. 제가 윙스팬(양팔을 벌린 길이)이 2m 가까이 되는데, (아버지처럼) 돌파할 때 빠르고 길게 들어간다. 경기 중 허리에 손을 짚거나, 뒷짐을 지고 걸을 때 똑같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허재 아들 허웅(DB), 허훈(수원 KT) 등 프로농구에는 ‘농구인 2세’가 많다. 정호영은 “‘2세 농구인’이 아니라 다른 선수들과 동등하게 경쟁하고 싶다. 아버지와 농구 얘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슛을 급하게 쏘지 마라’고 말해주는 정도”라고 말했다.
정호영은 지난 27일 전주 KCC전에서 92-76 승리를 이끌었다. 이 경기에서 프로 데뷔 후 개인 최다인 23점을 몰아쳤다. 지난 4일에도 KCC를 상대로 3점슛 6개 포함 22점을 넣었다. 정호영은 “대학(고려대) 시절 KCC와 연습경기를 많이 했다. 그 경험 덕인지 저도 모르게 자신감이 붙는다. 특히 안쪽이 비면 돌파를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창원 LG전(25일)에서는 처음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신인이 악착같은 수비를 하지 않는다며 이상범 감독님께 혼났다. 마음을 더 단단히 먹었다”고 전했다.
정호영은 하윤기(KT), 이우석(울산 현대모비스)과 고려대 18학번 동기다. DB-KCC전이 끝난 뒤 대학 친구들이 “호영아 쩐다(끝내준다)”고 말했다고 한다. 올 시즌 신인 드래프트 7순위로 뽑힌 정호영은 “솔직히 더 높은 순위도 기대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바로 실전을 뛸 수 있는 게 행운이었다. 롤 모델인 (박)찬희 형에게 포인트가드 리딩 역할도 배울 수 있다. 팀 에이스 (허)웅이 형은 ‘자신 있게 공격해’라고 조언해준다”고 했다.
올 시즌 프로농구는 순위 싸움 만큼 신인상 다툼이 치열하다. 하윤기, 이우석, 이정현(고양 오리온), 이원석(서울 삼성)이 경쟁 중인데, 여기에 정호영도 가세했다. 정재근은 1993~94 농구대잔치 시절 신인상을 수상했다.
정호영은 “아버지가 신인상을 받은 줄 몰랐다. (신인왕 경쟁에서는) 외국인 선수 앞에서 덩크를 꽂는 윤기, 그리고 우석이가 가장 돋보인다. 팀 성적이 좋다 보면 자연스레 신인상 후보에 거론될 거라 생각한다. 난 한 번 폭발하면 신나게 플레이하는 스타일”이라고 어필했다. DB는 6위를 기록 중이고, 정호영은 평균 득점은 6.5점이다. 그러나 그는 몰아치기에 능하다. 아직은 허웅, 박찬희에 이어 팀 내 3옵션 가드다. 정호영은 “난 호랑이 띠(98년생)인데, 2022년이 임인년이다. 호랑이 해에는 더 열심히, 더 잘해서 팀에 꼭 필요한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