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에서 만난 프로축구 강원FC 미드필더 한국영(32)은 “그날이 결혼기념일이었다. 아내가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승리가 선물’이라고 말해줬다”라고 했다. 한국영은 2020년 12월12일 전단비양과 결혼했는데, 1년 뒤인 2021년 12월12일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PO) 2차전 대전하나시티즌전에서 전반 30분 결승골을 뽑아내 승리와 함께 1부 리그 잔류를 이끌었다.
한국영은 “혼자 골 장면을 그리며 시뮬레이션을 많이 했다. 팀을 살리자는 생각 뿐이었다. 테크닉이 아니라 집념의 골이다. 세컨볼을 잡았는데 바로 앞에 마사(대전)가 있었다. 한번 터치해서 벗겨내니 페널티 박스 안이었다. 고개를 들었는데 코스가 거기밖에 없어서 그쪽으로 찼다”고 되돌아봤다.
사실 한국영은 오른쪽 다리 안쪽 인대 3개 중 2개가 파열된 상태로 뛰었다. 2020년 8월 경기 중 바닥에 머리를 부딪힌 탓에 뇌진탕 후유증도 있었다. 한국영은 “아내와 대구, 제천, 광주 등을 돌아 다니며 치료했다. 서울대학교 병원 교수님이 ‘럭비와 야구 선수들도 뇌진탕을 많이 당하는데, 1년 정도 퍼포먼스가 떨어지는 후유증이 있으니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조언해줬다”고 했다. 이어 “아내도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테니 긍정적으로 해보자’고 말해줬다. 결국 시간이 필요한 거였다. 거의 시즌이 끝날 때쯤 완치한 느낌이 들었고, 시즌이 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3년 전 같은 아파트 옆집에 살았던 인연이 있는 아내가 옆에서 많은 힘이 됐다.
대전의 마사(일본)가 “승격에 인생을 걸겠다. 2차전에 압도적인 경기를 하겠다”고 말한 게 한국영과 강원 선수들을 더 자극했다. 한국영은 “유튜브를 보니 대전 선수들이 승강PO 1차전을 마친 뒤 벌써 승격한 것 같았다. 마사가 좋은 선수지만, 경험이 있는 선배로서 인생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나도 2014년 브라질월드컵 벨기에전에 너무 간절했지만 그렇게 안된 적이 있다”고 했다. 잔류를 함께 이룬 최용수 강원 감독에 대해 한국영은 “카리스마 있다. 훈련해보면 왜 이기는 축구, 지지 않는 축구를 하는지 알 것 같다”고 했다.
승강 PO 2차전에서 강원 볼보이들이 노골적으로 시간을 지연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일본과 카타르에서도 뛰었던 한국영은 “경기할 때는 전혀 몰랐는데 축구 외적으로 논란이 돼 안타까웠다. 해외를 비롯한 다른팀에서도 티나게 그런 적은 없었다. 팀을 사랑하고 애정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잘못 표현된 것 같아 안타까웠다”고 했다.
한국영은 시즌 직후 전북 고창에서 지도자 C급 교육을 받았다. 자기 몸에서 좋은 피만 빼서 다시 넣는 발목 치료도 받고 있다. 한국영은 “2021년을 한 마디로 하면 ‘잘 버텼다’다. 제가 축구를 잘하는 선수는 아니지만, 감독님이 지시하는 롤을 잘 수행한다고 생각한다. 새 시즌을 앞두고 홀가분하고 설렌다. 자신감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