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옆에 벽이 하나 생겼어요. (박)지수만 믿고 맘 편히 쐈죠. 빽차(에어볼)도 잡아줄 것 같아요.”(강이슬) “슬 언니는 핸드 오프 후 어쩜 3점슛을 잡자마자 저렇게 잘 넣는지. 제가 다 짜릿해요. 괜히 ‘슬테판 이슬(NBA 스테판 커리에 빗댄 별명)’이 아니에요.”(박지수)
24일 KB금융그룹 천안연수원에서 만난 청주 KB의 슈터 강이슬(28·1m80㎝)과 센터 박지수(24·1m96㎝)는 서로에게 공을 돌렸다.
여자프로농구 KB는 지난 주말, 압도적으로 정규리그 1위를 확정했다. 23승1패를 거둬 역대 최소 경기(24경기) 만에 우승을 달성했다. 득점(14.6점)과 리바운드 1위(14.6개) 박지수가 골 밑을 장악했다. 3점슛 1위(3.13개), 3점슛 성공률 1위(42.6%) 강이슬이 외곽을 지배했다. 강이슬은 “전 소속팀에서는 견제가 심했고, 제가 우리은행만 만나면 겁을 냈었는데 어느 정도 극복한 것 같다. 지수가 있어서”라고 했다. 박지수는 “슬 언니를 KB로 오라고 꼬시길 잘했다”고 했다.
2012년부터 중하위권팀 부천 하나원큐에서만 뛰었던 강이슬은 플레이오프 무대도 못 밟아봤다. 올 시즌을 앞두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강이슬은 우승을 향한 열망을 안고 KB로 왔다. 2012년 고3 전국체전 이후 10년 만에 우승이라는 강이슬은 “여고 시절 밥 먹듯이 우승했는데, 프로에서 한계를 마주해 힘들었다. 매직넘버(1위 팀이 우승에 필요한 승수) ‘1’을 남겨둔 팀을 세 번이나 상대해봤는데 참 씁쓸했다”고 했다.
이어 “우승 세리머니가 처음이라 어색했다. 생각보다 행사가 길어서 (염)윤아 언니한테 ‘근데 정규리그 우승한 거 아니에요?’라고 묻기도 했다. 정신 없어서 우승 트로피도 오늘 처음 만져 본다. 얜(박지수) 웃던데, 난 울컥했다.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하면 오열할 것 같다”고 했다.
올 시즌 KB를 맡은 김완수(45) 감독은 박지수의 출전 시간을 29분대로 줄여줬다. 박지수는 “감독님이 뚝심이 있다”고 했다. 강이슬은 “감독님이 선수들을 위한 이벤트도 많이 해준다. 로또를 똑같은 번호로 사서 나눠주고 ‘당첨돼도 우리는 하나’라고 하셨다. 근데 5000원도 안됐다. ‘금 손’이 아니라 ‘똥 손’”이라며 웃었다.
KB는 작년 11월 아산 우리은행에 유일한 1패를 당한 뒤 14연승을 달렸다. 강이슬은 “팀을 옮기고 부담감이 컸는데, 오히려 한 번 지고 나니 내려놓게 됐다. 그 1패가 팀을 뭉치는 하는 약이 됐다”고 했다.
박지수-강이슬은 여자농구 최강 ‘원투펀치’ 중 하나로 꼽힌다. 앞서 삼성생명 박정은-이미선, 신한은행 전주원-정선민, 우리은행 임영희-박혜진이 있었다. 강이슬은 “역대 최강은 전주원-정선민 선배 같다. 이름 만으로도 이유가 되지 않을까”라고 했다. 박지수는 “저희도 상위권 같기는 한데”라면서도 “선배님들 명성을 넘기에는 아직 멀었다”고 했다.
신한은행은 2007년부터 6년 연속 통합 우승을 차지해 ‘레알 신한’이라 불렸다. 당시 신한은행과 가상 대결을 펼친다면 어느 팀이 이길까. 강이슬은 “당시 김단비(현 신한은행 에이스) 언니가 신한은행 식스맨으로 뛸 때 아닌가요? 아직은 힘들 것 같다. 지수와 허예은(21)이 지금처럼 잘 성장한다면 모르겠지만, 그 땐 제가 30대 중반이라서”라며 웃었다. 20대인 박지수-강이슬-허예은(21)이 지금처럼 잘해준다면 ‘KB 왕조’가 구축될 거라는 평가가 나온다.
가드 허예은이 시즌 초반 “목표가 30승 전승”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 강이슬은 “패기 넘친다. 역시 Z세대(1995년 이후 출생자)다. 예은이한테 ‘너만 잘하면 이겨’라고 놀리기도 했다”고 했다. 박지수는 “예은이가 요즘에는 경기 중 반말로 ‘올라가~’, ‘움직여~’라고 한다. 가드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KB는 남은 6경기를 다 이기면 여자농구 역대 최고 승률(96.7%, 29승1패)을 달성할 수 있다. KB는 26일 우리은행과 맞붙는다. 박지수와 강이슬은 국가대표로 다음달 세르비아 여자월드컵을 다녀온 뒤, 3월 재개되는 여자프로농구에서 통합우승을 노린다.
강이슬은 “지수는 자칭 ‘좀비’다. 관절, 근육 등이 아프지만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는다. 지수가 ‘상대 팀에 KB는 못 이긴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다고 했는데, 지수니까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지수야! 언니가 선물이야. 언니가 이 팀에 안 왔으면 어떻게 할 뻔했니? 지난 시즌과 가장 바뀐 게 뭘까. 나야”라며 웃었다. 박지수도 “언니가 득점, 수비, 손질(스틸)을 잘해준 덕분에 저도 ‘행복농구’를 하고 있다. 꼭 통합우승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