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테니스 영웅 라파엘 나달(36ㆍ세계랭킹 5위)이 호주 오픈 정상에 올랐다. 개인 통산 21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을 드라마 같은 역전승으로 장식했다.
나달은 31일 호주 멜버른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끝난 호주 오픈 테니스대회 남자 단식 결승에서 러시아의 다닐 메드베데프(26ㆍ2위)와 풀세트 접전 끝에 3-2(2-6 6-7〈5-7〉 6-4 6-4 7-5)로 승리하며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호주 오픈을 석권하며 남자 단식 21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을 달성한 나달은 라이벌 로저 페더러(스위스),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ㆍ이상 통산 20회 우승)를 제치고 이 부문 단독 선두로 뛰어올랐다.
경기 초반 나달은 패색이 짙었다. 메드베데프에게 1ㆍ2세트를 모두 내주며 벼랑 끝에 몰렸다. 1세트를 2-6으로 쉽게 내준데 이어 2세트마저 타이브레이크 접전 끝에 내주자 ‘끝났다’는 분위기가 코트 안팎을 감쌌다. 2세트 직후 대회 조직위원회가 AI(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활용해 계산한 메드베데프의 우승 확률은 96%. 나달의 희망은 4%에 불과했다.
그 4%가 기적의 숫자가 됐다. 3세트를 6-4로 잡고 회생의 발판을 마련한 나달은 4세트마저 6-4로 따내 2-2 동률을 이뤘다. 앞서가다 따라잡혀 체력적ㆍ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메드베데프와 달리 나달의 노련미는 갈수록 빛났다. 5-5로 팽팽히 맞서 시작한 타이브레이크에서 6-5로 앞선 뒤 여세를 몰아 한 게임을 더 따내며 7-5로 세트를 마무리했다.
5시간 24분에 이르는 대혈투를 승리로 장식한 나달은 경기 종료 직후 코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우승 트로피에 입 맞추며 환히 웃은 그는 우승 상금 287만5000호주달러(24억원)도 함께 받았다.
호주 오픈은 ‘조코비치의 독무대’로 여겨져왔다. 스무 번 우승하는 동안 9승을 호주 오픈에서 달성했다. 9차례 결승에 올라 모두 우승컵을 품에 안으며 ‘호주 오픈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상대적으로 나달은 호주 오픈에선 초라했다. 2009년 로저 페더러를 꺾고 단 한 차례 우승한 게 전부다. 이후 네 번 더 결승에 올랐지만 내리 준우승에 머물렀다.
공교롭게도 이번 대회에는 테니스 레전드 세 선수 중 두 명이 나서지 못했다. 페더러는 무릎 부상 중이고, 조코비치는 코로나19 백신 접종 거부 논란에 휘말리며 출전권을 잃었다. 나달은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3년 만에 호주 오픈 우승 트로피를 탈환하며 감동의 드라마를 완성했다.
라이벌들도 나달의 우승에 진심 어린 축하를 보냈다. 페더러는 자신의 SNS에 “내 친구이자 라이벌인 나달은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나와 마찬가지로 목발을 짚고 있었다”면서 “그가 사상 최초로 21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을 이룬 데 대해 축하의 뜻을 전한다”고 썼다.
백신 논란으로 출전 자격을 잃은 조코비치도 나달에게 박수를 보냈다. “올해 호주 오픈은 엄청났다”면서 “나달의 21번째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