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열린 베이징 동계올림픽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500m에서 우승을 차지한 키엘드 나위스(오른쪽)가 팀 동료와 기뻐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스피드 최강국' 네덜란드가 또 한 번 스피드스케이팅 포디움을 장악했다.
네덜란드는 9일까지 베이징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 3개를 쓸어담았다. 남·여 1500m와 여자 3000m에서 우승자를 배출, 경쟁국을 압도했다. 유일하게 금메달을 놓친 남자 5000m에서도 패트릭 로아스트가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앞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네 종목에서 네덜란드가 따낸 메달은 전체 메달(12개)의 절반인 6개(금 3개·은 2개·동 1개). 2개 이상의 메달을 따낸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네덜란드 빙속 파워는 지난 8일 재확인됐다. '빙속 괴물' 김민석(23·성남시청)이 출전한 남자 1500m에서 1, 2위를 독식했다. 김민석이 올림픽 2회 연속 동메달이라는 쾌거를 달성했지만, 더 높은 포디움에 올라가지 못한 건 네덜란드 장벽 때문이었다. 네덜란드는 이날 10조에서 스케이팅한 토마스 크롤이 1분43초55의 기록으로 2002년 솔트레이크 대회에서 데릭 파라(미국)가 세운 올림픽 기록(1분43초95)을 20년 만에 갈아치웠다. 하지만 11조에서 김민석과 함께 레이스한 키엘드 나위스가 1분43초21로 올림픽 기록을 재경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사이 네덜란드 선수들이 연이어 올림픽 기록을 깨는 진풍경이 벌어진 셈이다.
네덜란드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은 면면이 화려하다. 스벤 크라머는 지난 4번이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 포함, 모두 9개의 메달을 목에 건 레전드다. 이레인 뷔스트는 지난 7일 여자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5개 대회 연속 금메달 획득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2006년 토리노 대회부터 따낸 올림픽 메달만 12개. 나위스는 남자 1500m 세계 기록과 올림픽 기록을 동시에 보유한 종목 최강자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도 스피드스케이팅 강세를 이어가고 있는 네덜란드. 게티이미지 그들의 경쟁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핵심은 인프라다. 2014년 소치 대회 당시 네덜란드 왕립 스케이팅 연맹(KNSB)은 네덜란드 인구의 30% 정도인 500만명이 아이스 스케이트를 소지하고 있고 약 130만 명이 지역 아이스링크를 정기적으로 방문한다고 했다. 주말이면 지역 아이스링크장은 만석. 생활 속에 스케이팅이 자리잡았다. 2018년 2월 영국 매체 가디언은 '미국 전역에 6개밖에 없는 롱 트랙 아이스링크가 네덜란드에는 20개가 있다. 주니어 회원만 7000명에 달한다'고 전했다.
네덜란드는 기후 영향을 많이 받는다. 1997년 이후 엘프스테덴토흐트 대회가 열리지 않는 게 대표적이다. 엘프스테덴토흐트는 얼어붙은 운하를 가로지르는 약 200㎞ 정도의 장거리 스케이팅 대회로 얼음 두께가 최소 15㎝ 이상이어야 개최가 가능하다. 1963년 대회에선 약 1만명이 참가해 200명 미만이 완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운하가 자주 얼지 않으면서 생활 체육의 저변이 흔들릴 수 있지만, 탄탄한 인프라로 세계적 스타를 꾸준히 배출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크라머, 뷔스트 같은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이 슈퍼스타 대우를 받으면서 전국민적 관심을 뜨겁게 받는다. IOC는 이를 두고 '성공이 성공을 낳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