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이 열린 중국 허베이성 장자커우의 켄팅스노파크. 1차 시기를 마친 재미동포 클로이 킴(22·한국명 김선)은 자신의 연기가 믿기지 않는 듯 머리를 부여잡으며 슬로프를 내려왔다. 이어 무릎을 꿇고 슬로프에 입을 맞췄다.
고개를 든 그는 “오 마이 갓”이라고 외치며 활짝 웃었다. 전광판에 찍힌 점수는 94점.
하프파이프는 원통을 반으로 잘라 놓은 듯한 형태의 슬로프를 질주하며 점프와 회전 등 예술적인 동작으로 승부를 가리는 종목이다. 6명의 심판이 높이, 회전수, 기술 등에 따라 채점한다. 6명이 준 점수 중 최고점과 최저점을 뺀 점수의 평균을 구하여 순위를 결정한다. 만점은 100점이다.
2018 평창 대회 금메달리스트 클로이 킴의 움직임은 가벼웠다. 그는 1차시기에 공중에서 세 바퀴(1080도)를 도는 고난이도 기술을 두 번(프런트·백사이드 각 1회)이나 성공했다. 단번에 금메달 획득이 유력해졌다. 1차 시기 중 90점을 넘은 선수는 클로이 킴이 유일했다. 2·3차시기가 이어졌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점수를 넘지 못했다.
클로이 킴은 자신을 뛰어넘는 도전에 나섰다. 2·3차시기에서 넘어져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여자 선수들이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세 바퀴 반(1260도)을 시도했다. 그는 이 도전에 실패하자 짧은 탄식을 내뱉으며 아쉬워했다. 슬로프를 내려와서는 동료들과 웃으며 포옹했다. 2·3차시기를 모두 20점대 점수를 마쳤지만 금메달을 가져가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클로이 킴은 1998년 나가노 대회부터 정식 종목이 된 여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에서 처음으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남자부에서는 숀 화이트(미국)가 2006년 토리노 대회와 2010년 밴쿠버 대회에서 2연패를 이룬 바 있다. 클로이 킴에 이어 은메달은 케랄트 카스텔레(스페인·90.25점), 동메달은 도미타 세나(일본·88.25점)가 각각 차지했다.
클로이 킴은 평창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다소 부침을 겪었다. 갑작스럽게 쏟아진 관심에 부담감을 느꼈다. 평창 대회 직후에는 발목 부상으로 휴식을 취했고, 이듬해 명문 프린스턴대학에 진학해 스노보드를 그만두고 평범한 대학생이 되기도 했다. 미국 내 일부 인종주의자들 사이에서 인종차별의 타깃이 됐던 것도 문제가 됐다.
계속된 심리적 압박감에 그는 지난달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표지모델로 등장해 “평창올림픽 금메달을 부모님댁 쓰레기통에 던졌다”고 고백했다. 클로이 킴은 인터뷰에서 “나를 짓누르는 부담감과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결정이었다”라며 “과도한 관심 때문에 항상 화가 나 있었다. 단 하루만이라도 혼자 있고 싶었다.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클로이 킴은 실력으로 부담감과 비난을 이겨냈다. 방황을 끝낸 후 다시 스노보드장으로 돌아와 이번 올림픽을 비롯해 세계선수권, 월드컵 등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는 저력을 보였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꿈을 잠시 놓아버렸던 그가 스노보드를 다시 단단히 잡고 마침내 역사를 완성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