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에이스 양현종(34)은 "올해 TV에 많이 나오고 싶다"고 했다.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싶다는 게 아니다. 그만큼 마운드에 자주 올라 오래 공을 던지고 싶다는 의미다.
양현종은 2014년부터 2020년까지 7년 연속 170이닝 이상 투구한 '이닝 이터'다. 그 중 다섯 번은 180이닝을 넘겼다. 2016년엔 데뷔 후 가장 많은 200과 3분의 1이닝을 소화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더 많이, 더 오래"를 원한다.
지난 5일 기장 현대차볼파크에서 만난 양현종은 "모든 야구팬이 TV를 틀었을 때, '양현종이 또 나왔어?', '양현종이 아직 던지고 있어?' 같은 말을 자주 듣는 게 내 목표"라며 "예를 들어 지난해부터 야구를 좋아하기 시작한 팬은 나를 잘 모를 수도 있지 않나. KIA팬을 넘어 다른 팀 팬들도 '또 양현종이야?' 라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마운드에 오래 서 있고, 오래 던지고 싶다"고 거듭 강조했다.
양현종은 타이거즈(전신 해태 포함) 최고 투수 중 한 명이다. 통산 147승을 올려 팀 역대 최다승 2위에 올라 있다. 선동열 전 KIA 감독의 승수(146승)는 이미 넘었다. 이강철 KT 위즈 감독이 보유한 역대 최다승(152승)도 얼마 남지 않았다. 2020년까지 명실상부한 KIA의 에이스 자리를 지켰다.
2021년은 그렇지 않았다. 꿈을 찾아 미국으로 간 양현종은 메이저리그(MLB) 텍사스 레인저스와 산하 마이너리그 팀을 오르내리며 1년을 보냈다. 오랜만에 스프링캠프에서 선발 경쟁을 했고, 마운드에 오를 기회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실망스러운 투구 내용으로 고개를 숙일 때도 많았다. 여러 모로 낯설고 외로운 시간이었다.
다시 돌아온 KIA는 그에게 따뜻한 '집'이다. 양현종은 역대 FA(자유계약선수) 투수 최고액인 4년 최대 103억원에 사인했다. 1년 만에 다시 선발 한 자리를 확보하고 새 시즌을 준비한다. 그는 "아무래도 올해는 (선발진에) 내 자리가 있으니, 투구하는 날에 맞춰서 준비할 수 있다는 게 확실히 편하다"며 "작년엔 경쟁자 입장이라 조금 무리해서 보여줘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올해는 내 페이스, 내 계획대로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정든 동료들과 동고동락하는 즐거움도 새삼 느꼈다. 그는 "다들 많이 반가워 해줬고, 나도 그들이 많이 보고 싶었다"며 "그래서인지 그냥 며칠 못 보다 다시 만난 사람들처럼 어색한 것 없이 자연스럽게 잘 스며들었다"며 웃었다.
다만 이전과 달라진 점은 하나 있다. '중고참' 양현종은 동료들과 장난도 많이 치고 대화도 많이 하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최고참급으로 올라간 지금은 말수를 많이 줄였다. 팀에 열 살 넘게 어린 후배 선수가 많이 늘어서 그렇다. 그는 "젊은 선수들은 내가 가볍게 하는 말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서 말을 할 때 한 번 더 생각하고 조심하게 된다"며 "서로 부담스러울까 봐 아무래도 말을 적게 하게 된다. 시즌이 시작되고 같이 지내다 보면 점점 더 편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양현종은 늘 주위에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가 미국으로 떠날 때 도움을 준 이화원 전 KIA 대표이사와 조계현 전 KIA 단장, 2015년부터 2019년 중반까지 은사였던 김기태 전 KIA 감독 등에게도 그렇다. 양현종은 "내가 (미국 팀과) 계약할 때 전임 대표님과 단장님이 신경을 많이 써주셨는데, 그분들께 감사 인사를 잘 못 드렸다. KIA로 돌아온 직후에도 따로 인사를 드리지 못했다"며 "내게 서운하셨을 수도 있다. 신경이 쓰이고 죄송했다"고 했다.
다행히 최근 용기를 내 은인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따뜻한 응원이 담긴 답장을 받았다. 양현종은 "살갑게 먼저 연락하고 안부를 묻는 성격이 못 돼서 여러 모로 어려웠다"며 "모두 감사하게도 '이렇게 연락을 줘 고맙다'며 좋은 말씀을 해주시더라. 다시 한번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양현종은 지금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달 2일 개막을 기다리고 있다. 마운드에 다시 올라 팬들의 함성 속에 공을 던질 시간이 다가온다. 그는 "나 스스로도 그렇고, 팀에 대해서도 기대가 크다. 팬들이 야구장에 갈 날을 많이 기다리시는 것 같은데, 우리도 마찬가지"라며 "10개 구단 모든 선수가 그렇겠지만, 팬들의 응원을 다시 듣는다고 생각하니 설렌다. 선발 투수로서 144경기 시즌을 치르고 나면 어떤 성적이 나올 지도 기대가 된다"고 털어 놓았다.
준비 과정은 순조롭다. 지난 5일 라이브피칭(타석에 타자를 세워 놓고 투구)을 만족스럽게 끝냈다. 시범경기가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실전에 투입된다. 양현종은 "공의 스피드보다는 궤적이나 공끝의 힘을 많이 신경 쓰면서 던졌는데, 타자들이 다들 '나쁘지 않다'고 하더라. 계획대로 잘 되고 있는 것 같아 만족한다"며 "지난 시즌을 보니 이정후(키움 히어로즈)는 여전히 잘하고, 강백호(KT)도 많이 의젓해졌더라. 타자들이 강해진 만큼, 나도 앞으로 더 많이 공부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