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 개발자 A 씨는 지하철이 사람으로 북적이는 시간을 피해 오전 10시를 조금 지나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 도착했다. 딱히 정해진 시간은 없지만, 9~11시 사이가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출근 시간이다. 자리에는 스탠딩 데스크가 설치돼 있다. "제이슨, 휴가 잘 다녀왔어요?" 먼저 입사한 동료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넨다. 오늘은 지인과 약속이 있어 오후 5시 정도에 퇴근할 생각이다. 내일(매주 목요일)은 재택이라 출퇴근 걱정이 없다.
당근마켓 채용 철학 '나보다 뛰어난 동료'
구글을 연상케 하는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의 사무실 풍경이다. 지금은 코로나19 여파로 전원 재택근무에 돌입했는데, 이미 축적한 노하우가 있어 업무에 지장은 없다.
당근마켓은 이처럼 직원들이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 지난해 설립 7년 만에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에 등극하는 쾌거를 이뤘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당근마켓은 중고 거래 플랫폼을 넘어 하이퍼로컬(지역 밀착)에 기반을 둔 초연결 커뮤니티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이용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전국 서비스를 내놓은 2018년 1월 50만명에 그쳤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2년 8개월 만에 1000만명을 돌파해 현재는 1700만명에 달한다.
누적 가입자는 2200만명을 기록했으며, 연간 거래액은 1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기업 가치는 3조원까지 치솟았다.
이렇듯 가파른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 당근마켓은 인재 확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역광고에만 의존하는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어서다.
2015년 7월 3명의 창립멤버로 시작해 약 300명으로 직원이 늘었다. 최근 3년 동안 매년 약 3배씩 확대됐다.
이렇게 사람이 절실한 상황에서도 당근마켓이 창립 초기부터 절대 타협하지 않는 가치가 있다.
당근마켓에서 채용 실무를 담당하는 이상원 피플팀 리크루팅 매니저는 "손발이 되어줄 사람이 아닌 '나보다 뛰어난 동료'를 채용한다"며 "이 기준이 무너지는 순간 전체 조직이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회사는 '뛰어난 인재라면 어떤 환경을 좋아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조직문화를 만들고 있다. 즐겁게 일하는 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당근마켓은 엄격하게 출퇴근을 관리하지 않는다. 동료와 협업이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 자유롭게 시간을 조절한다.
직급 없이 영어 이름을 부르고, 소통할 때 극존칭을 쓰지 않는다. 직책에 따라 차별하지 않고 모든 정보를 공유해 업무 자율성을 극대화한다.
코로나19 이전에도 구성원들의 책임을 바탕으로 매주 목요일은 재택근무를 해왔다.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은 '문화의 날'로 지정해 오전에는 당근마켓과 직결된 여러 이슈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고, 오후에는 원데이 클래스·글램핑·전시 등 회사가 지원하는 문화 활동을 한다. 비대면으로 다른 팀 구성원들과 온라인 게임 토너먼트나 영화도 즐긴다.
자소서 생략하고 서류 결과는 24시간 안에
개방적인 조직문화와 더불어 채용 프로세스도 과감히 혁신했다. 한시적이긴 하지만 24시간 안에 서류 결과를 발표하는 '리쿠르트24'가 대표적이다. 많은 인재를 확보하는 데 치우치는 '다이렉트 소싱'의 한계를 극복했다.
이상원 매니저는 "불필요한 정보를 제외하고 핵심 직무역량에 집중해 빠른 검토를 하고 있다"며 "채용담당자가 서류심사를 하지 않는다. 직무에 대해 가장 잘 아는 현업 담당자들이 적극적으로 채용과정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매니저는 또 "10명 채용을 목표로 했을 때 지원자 100명 중 1등부터 10명을 뽑지는 않는다"며 "잘 맞는 인재가 많다면 더 많이 채용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고 했다.
서류 양식은 간편한 '구글폼'으로 통일했다. 설문지를 작성하듯 빠르게 써내려갈 수 있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자기소개서는 없앴다.
이 매니저는 "지원서를 검토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원자의 경험과 역량이 해당 직무와 얼마나 잘 부합하는지다"며 "자기소개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후 협업 능력과 인성 등 요소는 각 단계의 인터뷰에서 세밀하게 검증한다. 직무 인터뷰는 각 직군에 맞게 문제 상황을 제시하고 해법을 묻는 등 역량을 살펴볼 수 있는 방식이다.
마지막에 진행하는 컬쳐핏 인터뷰에서는 경영진을 비롯한 각 분야 리더들이 당근마켓의 문화와 지원자의 성향이 얼마나 잘 융화될 수 있을지 많은 시간 대화하며 파악한다.
이 매니저는 "누군가의 지시를 받는 것이 아닌 자율적으로 일을 찾아서 하는 분위기라 당근마켓과 잘 맞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며 "다른 동료에게 솔직하게 피드백을 줄 수 있는지, 본인이 하는 일에 재미를 느끼는지 등의 주제로도 대화를 나눈다"고 했다.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인재들이 모이면서 시장도 당근마켓의 양적·질적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국내외 투자사로부터 총 227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회사는 이 자금을 기술 고도화와 인재 채용, 해외 시장 진출 확대 등에 사용할 방침이라고 전한 바 있다. 이미 영국·미국·캐나다·일본 4개국에 글로벌 버전 '캐롯'을 운영하며 영토를 넓히고 있다.
이제 당근마켓은 적자 터널을 벗어나 김용현 공동대표가 약속한 '로컬 슈퍼앱'으로의 도약에 속도를 낸다. 그 중심에는 단연 '사람 경영'이 있다.
이 매니저는 "'인력', '인적자원'과 같은 표현이 회사가 구성원을 바라보는 관점을 나타낸다. 당근마켓은 구성원을 자원이 아닌 회사를 폭발적으로 성장시킬 '인재'로 대한다"며 "그들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