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성훈(47·일본명 아키야마 요시히로)이 2년여 만의 복귀전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추성훈은 26일 싱가포르 칼랑의 싱카포르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원챔피언십 ONE X 대회 종합격투기 라이트급(77kg급) 경기에서 아오키 신야(39·일본)를 2라운드 TKO승으로 이겼다. 승리가 확정되자 추성훈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는 케이지 바닥에 누워 포효했다.
추성훈은 열세라는 예상을 뒤엎고 복귀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1975년생, 만 47세로 격투기 선수로는 할아버지 격인 추성훈이 라이트급 3위 아오키에 고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식스팩이 선명한 근육질 몸매를 유지하고 있지만, 힘과 체력은 예전 같지 않았다. 게다가 아오키는 원챔피언십 라이트급 챔피언을 두 차례나 지낸 강자다. 최근 4연승 중이었다. 그런데도 추성훈은 두 경기 연속 화끈한 KO승을 기록하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최근 경기인 2020년 2월 셰리프 모하메드 전에선 1라운드 KO승을 거뒀다. 격투기 팬은 “나이를 극복한 승리였다. 노장 투혼에 감동했다”며 박수를 보냈다.
추성훈은 오랜 악연인 아오키를 상대로 자존심을 지켰다. ‘괴짜 파이터’로 유명한 아오키는 2008년부터 추성훈을 공개적으로 도발하며 대결을 요구했다. 당시 둘 다 연전연승을 달리는 최정상급 선수였다. 서로 체급이 달라 대결은 이뤄지지 않았다. 아오키는 꾸준히 추성훈을 자극했다. 지난해엔 추성훈을 향해 “왜 대결을 피하느냐”고 소리쳤다. 결국 웰터급(84㎏급) 추성훈이 체급을 라이트급으로 한 단계 내리면서 맞대결이 성사됐다. 추성훈은 이전 경기보다 몸무게 7㎏을 더 빼는 불리함을 감수하면서 맞대결을 벌였다. 추성훈은 “주변에선 아오키와 붙지 말라고 만류했지만, 그의 대결 요구에 응했다. 핑계를 대며 피하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추성훈은 올 초부터 훈련에 들어갔다. 아오키는 그래플링(메치기·태클)과 관절 꺾기의 초고수여서 특별한 준비가 필요했다. 아오키에게 무릎을 꿇은 선수는 신체 부위가 골절된 경우가 많았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유도 남자 81㎏급 금메달리스트 추성훈은 세계 1위(73㎏급) 출신 일본 유도 남자 국가대표 하시모토 소이치와 함께 훈련했다. 하시모토는 굳히기(유도의 그래플링·꺾기)의 일인자다. 타격가인 그는 밴디지(손에 테이핑) 없이 스파링했다. 밴디지는 손가락을 모아줘 펀치 위력을 올리는 효과인데, 아오키의 그래플링을 방어하기 위해 펀치력을 일부 포기한 것이다.
추성훈은 1라운드에 고전했다. 아오키는 경기 시작과 동시에 추성훈의 등에 올라탄 뒤 수차례 초크(조르기)를 시도했다. 추성훈은 반격은커녕 초크를 방어하는 데 급급했다. 완패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베테랑은 달랐다. 2라운드 들어 추성훈은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분위기를 바꿨다. 아오키를 견제하기 위해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날리며 거리를 벌렸다. 조급해진 아오키가 무리하게 다리를 잡자 추성훈의 어퍼컷 10연타가 상대 안면에 적중했다. 주도권을 쥔 추성훈은 이후에도 묵직한 펀치를 수십 차례 꽂았다. 아오키는 그대로 쓰러졌고, 추성훈은 매서운 파운딩 펀치를 퍼부었다. 마지막 1분여 동안 상대 안면에 적중한 펀치가 무려 55연타(니킥 1회 포함)였다. 주심은 2라운드 3분 8초를 남기고 경기를 중단시켰다.
경기 후 추성훈은 “초반엔 내가 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관중들이 ‘섹시야마’(추성훈 별명)을 외치는 소리를 듣고 힘을 냈다. 2라운드 도중 아오키의 눈빛에서 머뭇거리는 모습을 봤다. 이때다 싶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앞으로 더 섹시한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