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사람들’ 박민영 “어려운 숙제 같았던 작품… 매일 밤 치열하게 고민” [일문일답]
등록2022.04.08 06:01
박민영과 함께한 사계절이다. ‘기상청 사람들’ 속 박민영은 겨울의 혹한과 여름의 폭염에서 사랑했고 사랑을 받았다.
종영드라마 ‘기상청 사람들’에서 총괄예보관 진하경을 연기한 박민영은 일 앞에서는 완벽주의지만, 잔혹한 사내연애사 앞에서는 흔들리고 터지기도 하는 섬세한 감정선을 자유자재로 조절했다. 한때 사랑했던 남자에게 배신당하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혼란해 하는 팀원을 이끄는 리더로서 진하경의 온 계절을 그려내며 세대를 막론한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박민영은 ‘기상청 사람들’이 치열한 고민과 공부의 현장이었다고 표현했다.
-‘기상청 사람들’이 큰 사랑을 받았다. 작품의 연속 흥행인데. “감사하게도 어깨가 무거워졌다. 짊어지는 짐이 많다는 건 좋게 생각하고 있다. 작품을 끝낼 때마다 감사함과 약간의 아쉬움이 다음 작품으로 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기분 좋은 부담감이다. 이게 없으면 한편으로 연기가 재미없을 것 같다. 다시 한번 믿어주시고 사랑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기상청에 있어 달라진 시선이 있나. “이제 아무리 예보가 틀려도 화내지 않는다. 심지어 예보가 틀렸을 때 저도 모르게 조금 슬프더라. ‘열심히 준비하셨을 텐데 틀렸네’ 하면서 안타까워진다. 기상청에 직접 견학도 가면서 기상청의 모든 직원들께 존경심을 가지게 됐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게 많다.”
-진하경을 어떻게 준비했나. “기상청 관련 자료가 너무 희귀해서 다큐멘터리밖에 차용할 수 없었다. 기상청 다큐를 계속 반복해서 봤다. 잠깐이나마 기상청 견학을 가기도 하면서 직접 둘러 본 분위기, 직원들의 말투, 어려운 용어를 일상어처럼 내뱉는 자연스러움 같은 걸 어떻게든 흉내 내려고 연습을 많이 했다. 진하경이 모든 순간 기상청의 배경이 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간 해온 연기 중에 가장 힘을 빼고 딕션도 흘리면서 이완된 연기를 하려고 노력했다.”
-극 초반 한기준에게 사이다 대사를 날리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 중 하나다. 직접 대사를 해보니 10년 간의 세월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더라. 감정적으로 폭발했고 눈물이 너무 많이 나와서 절제하는 연기를 했다. 10년이 주는 힘이 굉장하다고 생각했다. 처음 그 대사를 읽었을 땐 시원하겠다, 질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 순간이 오니 너무 슬펐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이지 않나. 그래서 찍는 동안은 힘들었지만 끝내니 기분이 좋더라.”
-윤박과의 호흡은 어땠나. “현장에서 여러 번 한 말이 있다. ‘한기준은 윤박이 아니면 안 된다.’ 진짜 그만이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였다. 윤박이 해서 그나마 덜 밉고 이해가 되는 캐릭터로 완성됐다고 생각한다. 너무 좋은 배우다. 같이 연기할 때 재미있고 호흡도 잘 맞았다. 다른 작품에서 만나고 싶을 정도로. 캐릭터상으로는 정말 한기준의 모든 장면이 ‘킹’받고 꼴 보기 싫었다(웃음).”
-로케이션이 다양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제주도에서 촬영이다. 타이타닉을 생각하고 갔다가 호되게 태풍을 얼굴로 맞았다. 눈하고 귀에 물이 잔뜩 들어갈 정도로 힘든 촬영이었다. 재미있기도 했지만, 나이가 있다 보니 저체온증도 왔다. 제일 인상 깊고 아름답고, 생각보다 짧게 나와서 아쉬운 장면이기도 하다.”
-극 중처럼 배신한 전 남자친구와 쿨하게 친구로 지낼 수 있을까. “불행히도 너무 한국 사람인 것 같다(웃음). 쿨하게 할리우드 스타일이면 좋겠지만 뼛속까지 한국인이다. 나에게 그런 나쁜 짓을 하고 간 남자와 다시는 눈도 마주치고 싶지 않다. 나와 진하경의 가장 다른 점이라면 그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넓은 아량을 가지고 있지 않다.”
-‘로코 장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강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감독님마다 해주신 칭찬이 있다. 내뱉기 힘든 오글거리거나 불편한 대사들을 하면 조금 덜 이상하게 들린다더라. 칭찬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뻔뻔하게 내뱉으면 된다. 잠깐 뻔뻔해지는 게 장점인 것 같다. 평소에 장난치는 걸 엄청 좋아하는데 그런 게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다.”
-박민영의 오피스물은 이제 한 장르가 된 것 같다. “나이에 맞게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땐 학원물도 많이 했고, 사극이나 청춘물을 많이 했다. 지금은 내 나이에 맞는 오피스물에 자주 출연하다 보니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 나이에 맞게 가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잘 맞다 보니 작품이나 캐릭터에 잘 융화돼서 좋은 반응이 나오지 않나 나름대로 해석하고 있다.”
-다시 전문직 캐릭터에 도전할 생각이 있는지. “쉬운 길은 재미 없으니 항상 도전하고 싶다. 아직까지도 연기가 가장 재미있고 연기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좋은 것만 할 수 없지 않나. 힘들더라도 연기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 역시 내 몫이다. 늘 감사하게 준비할 생각이다.”
-연기 인생을 날씨로 표현하자면. “우리나라 날씨 그 자체인 것 같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명확하고 확실하다. 가끔은 태풍, 가뭄, 홍수 다 있다. 호호호. 내 나잇대 모든 이들이 경험하는 모든 일들을 거의 다 겪은 것 같다. 항상 안에서는 싸우고 있다.”
-‘기상청 사람들’은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나. “정말 기상청에서 근무한 것처럼 몸과 마음이 힘들었던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전체 사전제작 작품은 처음이다. 그래서 그런지 고민도 많았고, 치열하게 연구도 했고, 매일 밤 잠 못 이룰 정도로 많이 공부했다. 하나하나 과제를 이행하듯이 찍은 작품이다. 가장 어려웠던 숙제 중 하나였는데 잘 끝낼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고, 어려운 문제를 풀 때 쾌감도 있으니 좋은 경험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