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구할 ‘소방수’로 에릭 텐 하흐(52·네덜란드) 아약스 감독이 낙점 됐다.
유럽축구 전문가 파브리시오 로마노 기자는 19일 “텐 하흐가 맨유로 간다”고 밝혔다. ‘오피셜’을 알리는 시그니처 ‘Here we go’를 썼다. 영국 가디언도 “맨유가 며칠 내 텐 하흐 선임을 발표할 예정이며, 계약 기간은 3년 또는 4년”이라고 보도했다. 맨유가 아약스에 지불해야 하는 위약금은 200만 유로(26억6000만원)로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맨유는 작년 11월 올레 군나르 솔샤르 감독을 경질했다. 랄프 랑닉 임시 감독 부임 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8경기에서 단 9승에 그쳤고, 유럽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탈락했다. 맨유는 2013년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떠난 뒤 선수 영입에만 10억 파운드(1조6000억원)를 쏟아 부었다. 하지만 2016~17시즌 유로파리그 우승 후 5시즌째 무관이다.
2022~23시즌부터 맨유를 이끌 새 사령탑 경쟁은 텐 하흐와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파리생제르맹 감독 ‘2파전’이었다. 텐 하흐가 최근 암스테르담에서 가진 면접에서 맨유 스카우트와 선수 영입 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해 최고점을 받았다. 한 관계자는 “오히려 맨유가 면접을 보는 것 같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텐 하흐는 2017년부터 아약스를 이끌며 2차례 ‘더블(리그와 FA컵 우승, 2018~19, 2020~21)’을 이끌었다. 특히 2018~19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유벤투스 등을 꺾고 4강 돌풍을 일으켰다. 손흥민이 뛴 토트넘과 결승행을 다퉜는데, 아약스는 루카스 모우라에게 종료 직전 결승골을 허용해 ‘암스테르담 기적’의 희생양이 됐다.
아약스는 주축이던 도니 판 더 빅, 프렌키 더 용, 마타이스 데 리흐트 등을 떠나보냈다. 하지만 텐 하흐는 율리엔 팀버, 안토니 등을 키워내며 올 시즌 리그 1위(23승3무3패)를 이끌고 있다. 리그 29경기에서 85골을 넣고 단 15실점만 했다.
요한 크루이프의 토탈사커 영향을 받은 텐 하흐는 4-3-3과 4-2-3-1 포메이션을 쓰며 공격적이고 매력적인 축구를 추구한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맨유가 최근 몇 년간 어려움을 겪은 건 현대축구의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한 게 크다. 텐 하흐는 펩 과르디올라 맨시티 감독,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처럼 트렌디하다. 효율적인 포지셔닝, 높은 볼 점유율, 압박 등을 구사한다”고 말했다.
올 시즌 맨유 라커룸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중심으로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선수들, 그렇지 않은 선수들간 파벌이 형성됐다는 루머가 나왔다. 폴 포그바처럼 개성 넘치는 맨유 선수들을 휘어 잡을 감독이 필요하다.
영국 미러에 따르면 텐 하흐 부임을 걱정한 맨유 선수들은 판 더 빅에 연락을 했다고 한다. 아약스에서 텐 하흐 지도를 받았던 판 더 빅은 맨유로 이적한 뒤 현재 에버턴에서 임대로 뛰고 있다. 판 더 빅은 “텐 하흐는 선수들과 1대1 훈련을 하는 완벽주의자로, 식단 등 모든 측면을 통제한다. 그냥 건너 뛰지 않고 ‘원 스트라이크 아웃’”이라고 경고했다.
맨유 감독은 ‘독이 든 성배’라 불린다. 퍼거슨이 떠난 뒤 9년간 7명의 감독(대행 포함)이 거쳐갔다. 루이스 판 할, 조세 모리뉴 같은 명장들도 선수단 장악에 실패하며 쫓겨났다.
아약스는 18일 네덜란드 KNVB컵 결승에서 에인트호번에 1-2로 졌다. 경기장을 찾은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에인트호번 고문이 텐 하흐에게 귓속말로 “그냥 해”라고 네덜란드어로 말한 게 방송 카메라에 잡혔다. 히딩크가 텐 하흐에게 맨유 감독에 도전하라고 조언한 것이다. 텐 하흐가 부임하면 호날두를 정리하는 등 선수단 개편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텐 하흐는 2012년 네덜란드 고어헤드 이글스 감독 시절 매일 아침 잔디 길이를 쟀다고 한다. 완벽을 추구하는 펩 과르디올라(51) 맨시티 감독의 영향을 받았다. 텐 하흐가 2013년 바이에른 뮌헨 2군 감독을 맡을 당시 과르디올라가 뮌헨 1군 감독이었다. 당시 텐 하흐는 ‘미니 펩’이라고 불렸다.
공교롭게 텐 하흐와 과르디올라 모두 민머리인데, 맨체스터 연고 두 팀(맨유-맨시티) 감독 모두 민머리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펩과 ‘미니 펩’은 다음 시즌 치열한 ‘맨체스터 더비’를 펼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