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 포털 네이버와 카카오가 나란히 사령탑을 교체하며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기존 경영진이 광고를 넘어 콘텐트와 커머스 등으로 사업을 성공적으로 다각화한 상황이라 큰 어려움 없이 운전대를 잡을 전망이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포털의 한계를 뛰어넘을 미래 주력 사업에 쏠린다. 공교롭게도 두 회사의 신임 CEO(최고경영자) 모두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를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지목했다. 온라인 게임과 크게 다를 것 없어 '거품'이라는 우려가 퍼졌지만, 특화 서비스를 더해 '메타버스 2.0'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다. 일단 네이버가 전 세계 가입자 3억명 이상의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를 보유하며 우위에 섰다. 카카오는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의 혁신 DNA로 추격을 가속한다.
신임 CEO들 "미래 먹거리는 메타버스"
25일 업계에 따르면 최수연 네이버 신임 CEO는 이달 중순 가진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자신만의 신사업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중점적으로 보는 건 커뮤니티 기술을 활용한 메타버스 서비스다. 네이버 앱에 붙이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CEO 직속으로 메타버스 TF도 만들었다. 따로 리더를 두지 않고 관련 서비스를 맡는 직원들이 모여있는 구조다. 아직 상위 기획 단계라 구체적인 모습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카페·밴드·위버스 등 커뮤니티 서비스와 제페토의 융합이 기대된다.
최수연 CEO는 "스포츠의 경우 함께 경기를 관람하고 후기를 공유하는 식으로 커뮤니티가 세팅되지 않을까 한다"며 "스포츠·웹툰·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버티컬 서비스에서 제2, 제3의 메타버스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본 관계사 라인의 가상자산(가상화폐) '링크'를 적용할 가능성에 대해 "당연히 다 열려 있다. 후보자 중 하나겠지만, 다양한 NFT(대체불가토큰) 플랫폼이 있기 때문에 그 면에서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현재 제페토 안에서는 '젬'과 '코인'으로 아바타 의상과 액세서리 같은 아이템을 살 수 있다. 게임처럼 현금을 지불해 충전하는 방식이다.
향후 가상자산과 연계하면 링크로 거래하고 희귀한 아바타나 아이템은 NFT로 판매하는 모습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실물경제와 한층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네이버는 제페토를 글로벌 수준의 서비스로 끌어올리며 메타버스 경쟁력에서 카카오를 크게 앞질렀다.
2018년 8월 출시해 한국·중국·일본·미국 등 전 세계 200여 개국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지난달 누적 가입자 3억명을 돌파했다. 월간 활성 이용자 수는 2000만명에 달하며, 아이템 누적 판매량은 23억개를 달성했다. 90% 이상의 이용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다.
실적도 안정적인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네이버의 콘텐트(웹툰 제외) 매출은 2021년 1분기 395억 원에서 4분기 690억 원으로 늘었다. 올해 1분기는 531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4%가량 증가했다.
여기에 네이버는 주변 지형과 건물 등 현실을 가상세계로 복제해 연결하는 디지털트윈 솔루션 '아크버스' 구축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소프트뱅크와 일본에서 고정밀 지도 제작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 기술이 고도화하면 메타버스 속 배경을 실제 우리가 사는 공간으로 꾸미는 것도 가능하다.
최수연 CEO는 지난 21일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제페토의 퀄리티 개선을 비롯해 메타버스 관련 기술은 내재화나 D2SF(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와 같은 툴로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는 커뮤니티, 카카오는 롤플레잉 채팅
최근 카카오의 지휘봉을 잡은 남궁훈 CEO 역시 신개념 메타버스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아바타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경쟁사 서비스와 달리 카카오톡의 소통 경험을 접목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남궁훈 CEO는 공식 선임 전 내정자 신분이었을 당시 비교적 자유로운 상황에서 앞으로의 청사진을 공유했다.
그는 "카카오가 강한 텍스트 기반 메타버스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두 개의 TF를 발족한 상황이다. 롤플레잉 채팅이라고 간단히 정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는 메타버스의 개념을 지금보다 더 넓게 봤다. 화려한 3D 그래픽뿐 아니라 음성·이미지의 2D는 물론 1차원적인 문자도 메타버스화할 수 있는 콘텐트 형태로 판단했다.
이는 하이텔·천리안·나우누리 등 1990년대 PC 통신 시절의 '머드게임'과 유사하다.
지금보다 현저히 느렸던 접속 환경에서 이용자들은 이미지와 영상 대신 상상력으로 게임을 즐겼다. 캐릭터를 움직일 때는 '이동'과 같은 명령어를 방향(동·서·남·북)과 함께 입력했다.
몬스터가 나타났다는 메시지가 뜨면 '공격'이나 '방어' 등과 같은 선택을 했다. 몬스터 수집 게임 '포켓몬스터' 초기 버전에서 그래픽이 빠지고 상황 설명만 있다고 보면 이해가 쉽다.
20년 넘게 게임업계에서 내공을 쌓은 남궁훈 CEO라면 문자 기반 메타버스도 충분히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한게임 창립 멤버인 그는 NHN USA와 CJ 인터넷, 위메이드 대표를 거쳐 2015년 카카오에 합류했다. 이후 카카오게임즈의 각자 대표를 맡아 글로벌 게임사로 발돋움하는 데 기여했다.
카카오도 메타버스 생태계에 블록체인을 연동할 것으로 관측된다.
자체 메타버스 플랫폼은 없지만, 블록체인 계열사 그라운드X가 개발한 '클레이튼'이 있어 든든하다. 남궁훈 CEO도 메타버스 시대에는 개인이 콘텐트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로 바뀔 것으로 예상했다.
성종화 이베스트증권 연구원은 "막강한 블록체인 사업 잠재력은 언제든지 강한 힘을 발휘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대표적으로 그라운드X의 디지털아트·NFT 유통 서비스 '클립드롭스'는 올해 1월 누적 거래액 100억 원을 찍었다.
이 밖에도 카카오는 네이버와 마찬가지로 지인 기반이 아닌 관심사 기반의 커뮤니티형 메타버스 서비스도 준비한다.
이를 위해 카톡 오픈채팅을 재정의한다. 카톡은 지인들끼리 쓰는 서비스라 한국인이 대부분이다. 특정한 주제에 더욱 집중해 방을 개설하는 시스템을 만들면 글로벌 확산에 용이할 것으로 내다봤다.
남궁훈 CEO는 이달 6일 취임 후 처음으로 가진 간담회에서 "메타버스 등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글로벌 기업의 입지를 다져나갈 예정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