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의 리셀 플랫폼 '크림'이 2~3년 묵은 명품도 미개봉 상태면 거래가 가능하도록 해 소비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명품은 미개봉 상품이라도 몇 년도에 생산됐느냐에 따라 제품 사양은 물론 가격도 달라질 수 있어 크림의 약관 변경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소비자 A 씨는 최근 크림에서 '샤넬' 가방 입찰에 성공했다. 원하던 상품을 갖게 돼 기뻤던 A 씨는 뒤늦게 크림 약관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크림 홈페이지 공개된 약관에 '샤넬 상품은 28번대 이후 상품만 거래 가능'이라고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샤넬은 출시된 연도 등에 따라 번호를 준다. 게런티카드에 새겨진 앞자리 번호에 따라 28번대, 29번대, 30번대, 31번대 등으로 불린다. 명품 업계에 따르면 샤넬은 최근 32번대 제품까지 선보인 바 있다. 크림이 약관에 쓴 28번대는 보통 2018년 말에서 2020년 사이에 생산돼 세상에 나온 제품으로 추정된다.
A 씨는 "구하기 힘든 제품이어서 크림에서 플미(한정판에 붙는 프리미엄, 웃돈)까지 주고 샀다. 가방 가격만 700만 원대다"며 "약관을 보면 내 가방이 생산된 지 2~3년 지난 제품일 수 있다는 것 아닌가. 누가 플미를 주고 묵힌 제품을 사나"라고 토로했다.
크림은 리셀샵이긴 하지만 '중고'가 아닌 새 제품만 취급하고 있다. 몇 년 지난 제품일지라도 새 상품인데 문제가 되는 이유가 뭘까. A 씨는 샤넬의 인기 가방 모델인 '코코핸들(탑 핸들이 장식된 가방)'을 예로 들었다. 그는 "가령 코코핸들은 28번대의 경우 내부가 천으로 돼 있다. 그러나 31번대부터는 가죽으로 바뀌었다. 샤넬은 모델의 번호 대에 따라 제품 사양이 달라질 수 있다"라고 꼬집었다.
당연히 리셀을 할 때 가격도 달라진다. 코코핸들의 경우 내부가 천에서 가죽으로 바뀐 시점에 가격 인상을 했기 때문에 두 제품 사이에는 플미를 포함해 적어도 50만~100만 원의 차이가 있다.
코코핸들만의 상황이 아니다. 명품 업계 관계자는 "샤넬은 클래식 백처럼 수십 년째 같은 디자인을 선보이는 스테디셀러와 한두 해 나오고 사라지는 시즌 백이 있다"며 "그러나 클래식 백일지라도 몇 번대냐에 따라서 미세한 색감이나 가죽 질감의 차이가 있다. 캐비어 가죽이라고 할 경우 알 크기나 모양이 미세하게 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은 크림이 샤넬 제품을 판매할 때는 입찰 전부터 미리 번호 대를 고지하거나 현재 규정된 28번대를 최신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A 씨는 "샤넬 가방이 한두푼 하는 상품도 아니지 않나. 우리가 크림에서 플미를 주고 사는 이유는 구하기 어려운 가장 양질의 정품을 얻기 위해서"라며 "그런데 판매되는 번호 대가 2~3년 전 것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뭐하러 크림을 찾겠느냐"고 반문했다.
네이버의 손자회사인 크림은 최근 리셀 플랫폼인 무신사의 '솔드아웃'과의 이른바 가품 경쟁에서 승리를 거뒀다. 무신사가 정품으로 인증해 판매한 제품이 크림에서 가품 판정을 받았는데, 해당 브랜드의 본사에서 가품이 맞다고 인증을 했다. 무신사는 이미지 손상을 입었고 크림은 사실상 국내 리셀 시장을 이끌어가게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크림 선전은 매출에서도 엿볼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크림은 4월 들어 일평균 거래액 100억 원을 넘어섰다. 현 추세라면 연간 총거래액이 3조 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낙관론도 나온다. 업계는 크림이 앞선 가품 경쟁에서 승리했고, 솔드아웃과 달리 샤넬이나 '에르메스' 등 럭셔리 브랜드를 취급하면서 거래액도 뛰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구구스 같은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도 판매 제품 사진과 함께 샤넬은 번호 대를, 에르메스는 각인 알파벳을 공개한다. 소비자가 생산 연도를 가늠하도록 정보를 주는 차원"이라며 "크림이 우리나라 간판 리셀샵이 되고 싶다면 관련한 약관을 다시 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네이버 관계자는 "당사의 검수 기준은 생산연도에 방점을 두는 것이 아닌 정·가품 여부, 미사용품 여부, 검수 기준에 다른 하자 여부"라며 "구매자에게 몇 번대 제품임을 고지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이용 편의성 증대를 위해 샤넬 등 일부 대상제품에 한해서는 보관 및 검수를 한 후 생산연도를 추정할 수 있는 제품번호 노출이 가능하도록 개선하는 것을 함께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