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게임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한 일렉트로닉 아츠(EA)의 축구게임 FIFA(국제축구연맹) 시리즈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와 관련해 과도한 수준으로 상업화를 추진하는 FIFA에 대해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뉴욕타임스와 ESPN을 비롯한 미국 매체들은 11일 “게임 개발업체 EA와 FIFA가 그간 유지해 온 라이선스 계약과 관련해 기간 연장을 위한 협상이 최종 결렬됐다”면서 “이에 따라 EA는 내년 여름 여자월드컵 직후부터 FIFA 시리즈 판매를 중단한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EA는 향후 해당 게임에서 ‘FIFA’라는 타이틀을 지우고 ‘EA 스포츠 FC’로 명칭을 바꿔 재출시할 예정이다.
지난 1993년 첫 출시 이후 FIFA 시리즈는 스포츠 게임의 대명사로 불리며 베스트셀러 겸 스테디셀러의 지위를 유지해왔다. 지난 20여 년간 누적 매출은 200억 달러(25조6000억원), 유저 규모는 전 세계적으로 1억50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포츠 게임 분야의 성공사례로 주목 받은 FIFA와 EA의 30년 동행이 멈춘 건 FIFA의 정책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FIFA는 최근 EA와 협상 과정에서 연간 1억5000만 달러(1900억원) 수준이던 기존 라이선스 비용을 2배 이상 대폭 인상하겠다고 통보했다. 뿐만 아니라 EA가 출시하는 다른 게임에 대해서도 FIFA의 다양한 권한을 보장해 줄 것을 함께 요구했다.
뉴욕타임스는 “라이선스 계약이 무산된 것이 EA보다는 FIFA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EA는 ‘FIFA’ 타이틀을 사용하지 못하더라도 각종 프로리그 및 구단과 맺은 계약이 여전히 유효해 실질적인 타격이 크지 않을 전망이다. 반대로 FIFA는 최대 규모의 스폰서십을 놓쳤을 뿐만 아니라 EA와 결별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후속 효과가 거의 없다.
FIFA가 라이선스 비용을 무리한 수준으로 올리려 한 건 최근 열을 올리고 있는 ‘상업화 경향’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천문학적 지출을 지속한 FIFA는 사업 다각화를 통한 수익 증대에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지난달 선보인 디지털 영상 플랫폼 ‘FIFA+(플러스)’는 궁극적으로 ‘축구의 넷플릭스’를 지향한다. FIFA 주관 국제대회 뿐만 아니라 각국 A매치 중계까지 자체 제작해 방송사에 판매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목표다.
최근 FIFA가 월드컵 개최 주기를 2년 내지는 3년으로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도 실질적으로 수입 증대를 위한 포석이라는 지적이 많다. 뿐만 아니라 FIFA는 패션 사업, NFT(대체불가토큰) 발매 등 다양한 영역에 동시다발적으로 뛰어든 상황이다.
FIFA는 2018년 러시아월드컵으로 9억 파운드(1조4165억원)의 수익을 냈지만, 월드컵이 없는 해에는 매년 3억 파운드(4700억원) 안팎의 적자를 보고 있다. 사실상 월드컵에 의존해 돈을 벌던 FIFA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특급 변수를 만난 뒤 수입원 다각화 필요성을 절감했고, 이를 무리하게 추진하다 EA와 엇박자를 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