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사방을 감싸는 미디어 화면과 고막을 때리는 웅장한 사운드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미디어 아트'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디지털 디자인 기업 디스트릭트의 실감형 미디어아트 전시관 '아르떼뮤지엄'과 예술 전시 기업 티모넷의 몰입형 예술 전시 '빛의 시리즈'다. 아르떼뮤지엄은 국내에 제주와 여수, 강릉까지 총 3곳이 있고 '빛의 시리즈는' 제주와 서울에 문을 열었다.
여행하기 좋았던 초여름의 어느 날 아르떼뮤지엄 강릉과 빛의 시리즈 두 번째 프로젝트 '빛의 시어터'에 다녀왔다.
압도적인 미디어 아트 아르떼뮤지엄 강릉
따사로운 햇살로 손부채를 빠르게 움직이던 지난달 20일 대낮에 아르떼뮤지엄 강릉에 도착했다. 시원한 실내 공간이 절실할 때 딱 맞는 실내 콘텐트다.
아르떼뮤지엄 강릉은 2020년 제주, 2021년 8월 전남 여수에 이어 지난해 12월 23일 문을 연 국내 세 번째 전시관이다. 하루 평균 3500명, 최대 6500명이 방문하는 기록을 세우는 등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다.
실내 규모만 4975㎡(1500평)로 제주와 여수보다 크고 층고 10m로 꽤 큼직한 건물이다.
공간에는 험준한 산과 산 사이 물길이 세차게 흐르는 강원도의 지역 특성을 살려 ‘밸리(VALLEY)’라는 테마로 12개 미디어 아트 작품이 전시된다.
키오스크로 티켓을 끊으면 바로 입장할 수 있다. 전시관 내부에는 화장실이 없으니 미리 다녀오라고 입구를 지키고 있는 직원이 알려준다.
어두캄캄한 입구에서 검은색 커튼을 열고 들어가면 전시가 펼쳐진다. 동시에 "우와~"하는 탄성이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다.
눈을 어디에 둬도 보이는 대형 미디어 작품과 그에 어울리는 배경음악이 보는 이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첫 작품은 '플라워(FLOWER)'로, 무한한 꽃잎의 연주가 선사하는 생명의 환희를 표현했다고 한다. 수만개의 분홍빛, 보랏빛 꽃잎이 피어나고, 우수수 떨어지는 화면을 보고 있으니, 황홀한 기분마저 드는 작품이다. 꽃잎은 사방의 벽에서 피어나고 발아래 바닥까지 떨어진다.
첫 작품은 똑같이 만나지만, 다음 작품부터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즐기면 된다. 공간을 나누어 원하는 작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다음에 눈에 들어온 작품은 긴 뿔과 몸에 꽃이 피어난 사슴이 울창한 숲을 뛰어다니는 작품이었다. 디스트릭트와 해카타오(HACKATAO)가 만물을 구성하는 4개 원소를 조합해 만든 세계 '스피릿 포레스트'에서 치유와 회복을 상징하는 땅의 정령 사슴을 투영한 것이다.
이 사슴에게 유독 사람들이 다가갔는데, 이유가 있었다. 관람객에게 사슴이 반응해 따라오거나 멀어지고, 꽃으로 흩어지기도 하는 등 실시간으로 사슴이 변화하며 몰입과 교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슴을 지나니 아이들이 앉아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들 호랑이가 그려진 그림에 제각각 색을 칠하고 있었다.
'라이브 스케치북' 전시관으로 내 손으로 직접 색을 입힌 만화 속 동물이 미디어 아트 화면 속에 나타나 울창한 숲을 뛰어다니는 장면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스캐너에 넣으면 작품 속에 동물들이 살아 움직이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인증샷 스폿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리는 줄이 가장 긴 곳은 '태양(SUN)'이었다. 생명의 에너지를 품고 있는 거대한 태양 빛을 온몸으로 맞이하며, 일명 '역광샷'을 제대로 찍을 수 있는 곳이다.
가장 압도적인 작품은 '파도(WAVE)'였다. 쏟아질 듯하지만 갇혀 있는 초대형 파도가 눈 앞에 펼쳐지는 작품이다. 멍하니 서서 다가오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으니 집어삼킬 듯 다가와 무서움마저 느껴진다.
한 관람객은 "아이가 너무 무서워해서 못 보겠다"며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이 밖에도 '번개(THUNDER)' '동굴(CAVE)' '해변(BEACH)' 등 눈을 사로잡는 작품이 이어진다.
전시관의 마지막은 '정원(GARDEN)'이다. 초대형 미디어아트를 통해 표현되는 빛이 절정으로 치닫는 공간이다. 강원의 아름다운 자연이 공간을 채우고 이어 반 고흐, 모네 등 유명 화가들의 걸작을 재현한 미디어아트 쇼가 30분 동안 이어진다. 여기에 마음을 울리는 음악이 더해지니 바닥에 털썩 앉아 쇼를 즐겨봐도 좋겠다.
극장에서 명화를 '빛의 시어터'
1963년 루이 암스트롱의 공연을 시작으로 2012년까지 외국 관광객에게는 한국문화를, 내국인에게는 세계적인 외국 공연을 선보이던 ‘워커힐쇼’가 열렸던 워커힐 시어터에 새로운 콘텐트가 들어섰다.
지난달 27일 몰입형 예술 전시 '빛의 시어터'가 관람객에게 매우 친숙한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을 담아 문을 열었다.
빛의 시어터는 화가의 명작을 고화질 프로젝터가 벽, 기둥, 바닥까지 투사해 사방팔방으로 작품을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총면적 3400㎡, 최대높이 21m의 모든 공간에 화면이 설치돼 웅장하면서도 압도적인 규모로 관람객을 몰입하게 한다.
이번 전시 ‘구스타프 클림트, 골드 인 모션’은 20세기 황금빛 색채의 화가로 불리는 오스트리아 회화 거장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을 빛과 음악으로 새롭게 재해석한 작품이 펼쳐진다. 이 밖에도 한스마카르트, 오토 바그너, 에곤 쉴레 등 빈에서 활약한 거장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었다.
40분의 구스타프 클림트 작품이 끝나면 이후 10분 동안에는 이브 클랭의 공연에 초대했다.
이브 클랭은 지중해 하늘을 동경했던 화가로, 순수한 형태로 색을 개별화하고 해방시키며 확대하고자 하는 작품을 그려냈다.
이에 빛의 시어터에서는 '이브 클랭, 인피니트 블루'라는 전시로 관람객에게 1950년대 파리에서 열린 컨템포러리 아트 페어의 공연을 선사했다.
특히 옛 워커힐 시어터의 샹들리에, 리프트와 같은 무대장치들을 그대로 보존해 '극장'에서 공연을 보는 느낌을 배가했다. 특히 2층에서 내려다보는 미디어아트의 황홀함과 계단식 좌석에 앉아 멍하니 느껴보는 감각적인 몰입의 경험은 '빛의 시어터'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포인트다.
관람객은 화면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도 있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온몸을 감싸는 듯한 작품의 압도감을 느껴볼 수도 있다. 극장에서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관람이 아닌, 자유롭게 움직이며 원하는 방식으로 관람할 수 있다는 얘기다.
티모넷 박진우 대표는 "과거에는 무대와 관객이 분리돼 있었지만, 이제 그 경계가 지워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