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장에서 느낀 감정을 카메라 앞에서 그대로 표현하는 것. 배우 박지환의 연기 철학은 분명했다. 그래서인지 박지환이 연기한 정인권 캐릭터는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고 작위적이지 않아 매력적이라는 평을 들었다.
박지환은 어제(12일) 종영한 tvN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오일장 순댓국밥집을 운영하는 정인권 역을 맡아 시청자들을 만났다. 현실에 발붙인 듯한 생생함과 아들 정현(배현성 분)과의 먹먹할 정도로 현실적인 케미스트리는 시청자들을 극에 몰입하게 했다. “대본대로 하면 됐다”는 박지환은 솔직하고 또 겸손하게 ‘우리들의 블루스’를 마친 소감을 전했다. -어떻게 ‘우리들의 블루스’에 출연하게 됐나. “오디션 제안을 받았다. 처음에 무슨 오디션인지 모르고 안 보겠다고 했다. 오디션이 싫은 게 아니라 당시 계획에 다른 것을 넣고 싶지 않았다. 관계자분이 ‘노희경 작가님 작품인데?’라고 하시더라. 그래도 좋은 인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내심 있었는데 주연 오디션이라고 해서 마음을 정리한 후에 가게 됐다. 최영준이 먼저 오디션을 보고 있었고, 이후에 내가 들어가서 대사를 맞추고 작가님이 같이 하자고 해주셔서 함께하게 됐다. 진짜 럭키 아닌가. 그 좋은 연출님, 작가님, 배우들 안에서 같이 작업해볼 수 있다는 게 쉽게 가질 수 없는 기회이지 않나. 너무 소중한 추억이었다.”
-많은 유명한 배우들과의 작업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부담은 없었고 너무 신났다. ‘새카맣게 타서 들어올 정도로 신나게 재미있게 놀아야겠다’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신났다.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운 현장이었다.” -개과천선하는 인물이다. 달라진 정인권을 표현하기 위해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 “대본대로 하면 됐다. 대본이 너무 훌륭해서 내가 그런 계기를 만들지 않아도 잘 녹아있었다. 대본을 직접 보여주고 싶다. 얼마나 억지 아닌 감정으로 그런 사연들이 생겨서 훌륭한 신이 되는지. 대본대로만 하면 됐다. 내가 특별히 생각해서 ‘개과천선했으니 이렇게 해야겠다’ 하지 않았다. 읽기만 하면 되는 아주 아름다운 대본이었다.”
-대사 하나마다 지문이 하나씩 있다고 하던데. “꼼꼼함보다는 잘 다가설 줄 아는 것 같다. 표현을 함에 있어서 어떻게 어색할 거며 어떻게 섬세할 것인지 지문에 다 쓰여 있다. 지문도 연기해야 한다. 그것을 기다려주신다. 그게 갑갑하지 않다. 그 자체로도 이야기가 되고 있다. 묘한 대본이다.”
-부끄럽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 하는 정인권이지만 행동은 그렇지 못하다. 정인권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을까. “사람이 가진 부족함이다. 어느 순간 성장을 못 한 거다. 이대로가 인생의 마지막일 것 같지만 계속 변하지 않나. 사실 그 계절에 적응을 못 한 거다. 자존심도 있어서 싫고. 남의 시선을 많이 신경 썼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철이 없다고 생각하면 그런 것들이 보인다. 그래서 내가 정인권 캐릭터를 연기할 때 절대 자기 연민을 가지지 말자고 생각했다. 작가님도 ‘더 나빠지고, 독해지고, 화를 내고, 모질어져라’라고 했다. 그래서 ‘어디까지 거칠어 지는 거지?’라는 생각도 했다.” -아들 역할이었던 배현성과의 호흡은 어땠나. “이루 말할 수 없이 너무 좋았다. 배현성이 태도도 훌륭하고 실제로도 정말 사근사근히 다가와 줬다. 첫인상도 제주의 푸른 하늘이 비치는 것처럼 너무 마음에 들고 좋았다. 기분이 좋으면 일이 잘될 것 같지 않은가. 그래서 ‘너무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같이 연기하는 데 있어서 이미 배우로서 너무 훌륭했다. 귀한 친구인 것 같다.”
-배현성과의 감정 신이 힘들지는 않았나. “그 장면에 대한 대본을 작가님과 한번, 감독님과 두 번 읽고 한 번도 읽지 않았다. 감정이 기억돼 있을까봐. 그리고 현장에서 촬영하기 한 시간 전에 대본을 봤다. 그런데 배현성이 너무 멋진 감정을 가지고 내 앞에 서 있었고 나를 끌어내 줬다. 배현성한테 감사하다. 그런 장면은 혼자 하는 게 아니지 않나. 내가 말이 많았던 것뿐이지 아들이 다 만들어 준 장면이다. 그리고 신기한 게 누구라도 대본을 읽으면 울 것이다. 대본이 그렇게 쓰여 있다. 느끼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 거기에 훌륭한 배현성. 나는 그저 가서 (연기)하면 됐다.”
-시청자들이 박지환 배우의 연기를 작위적이지 않아서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연기에 대한 평을 하자면. “최소한의 준비를 하고 최대한의 감각을 열고 그 순간을 맞이하는 거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A컷, B컷이 없다. 작품의 흐름에 맞는다면 어떤 것이든 다 상관없다. 이제는 좀 더 새로움을 향하고 싶은데 아직 영감이 오지 않아 애가 탄다. 30살쯤에 제주도의 한 갤러리에서 받았던 그 영감이 10년을 이렇게 연기해오게끔 했다. 그렇다고 영감을 억지로 가져오고 싶지 않다. 어느 날 문득 받았던 영감처럼 기다려보는 거다. 끊임없이 찾아 헤매고 듣고, 보고, 느껴야 영감도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감사한 동료들이 많아서 좋은 자극을 받고 있다.” -노희경 작가, 대본에 대한 칭찬을 많이 했다. 김규태 감독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면. “진짜 대단한 분 같다. 그리고 진짜 알고 싶다. 감독님이 말씀이 많은 분이 아닌데 현장에서의 보이지 않는 카리스마, 그 모든 것들을 매끄럽게 진행하는 태도, 빛나는 시간을 맞이하려 하는 초석 놓기 등이 너무 좋다. 특히 ‘아직도 작가님을 알아가는 중이다. 나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본다’고 했을 때 매력 있다고 느꼈다. 너무 멋있는 어른 아닌가. 큰 그릇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을 때 깜짝 놀랐다. 현장에서 은은한 카리스마가 느껴지고, 그쪽으로 향하기 위한 방법이 너무 부드럽다. 묘하고 재미있고 멋있다.”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나. “‘맨날 울려’라고 말한 것을 봤다. 오늘은 안 울겠지 했는데 맨날 운다고 하더라. 사실 그런 것이 따뜻한 눈물, 응원의 눈물 같다.”
-‘우리들의 블루스’가 어떤 작품으로 남게 될까. “갑자기 떨어진 혜성 같은 행복 같다. 이런 작품에 좋아하는 선배들, 감독님, 작가님과 작업을 할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감히 할 수 없는 캐릭터에 캐스팅이 됐다고 생각한다. 운석이 떨어진 것 같은 행복이다. 사실 지금도 신기하다. 그 라인업에 나와 최영준이 들어가 있는지. 그래서 최영준과 ‘눈에 모든 보이는 것에 감사하자’라는 이야기를 했다. 또 최영준에게 ‘내가 제일 행복한 건 네가 상대역이라는 거야’라고 하자, 최영준도 ‘나도 그래. 우리도 즐겁게 해보자’라고 답해줬다. 둘이 마음을 나누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