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전문 회사를 표방하며 SK텔레콤에서 떨어져 나온 SK스퀘어가 신사업 확장에 애를 먹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투자 심리가 악화하자 주요 종속회사들의 증시 데뷔가 일제히 뒤로 밀렸기 때문이다.
보안·커머스·플랫폼·모빌리티 등 미래 먹거리를 전면에 내세운 박정호 SK스퀘어 대표의 어깨가 무거워지고 있다. 반도체 자회사 SK하이닉스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지금의 상황을 당분간은 벗어나지 못할 전망이다.
SK하이닉스 그늘 벗어나야 13일 SK스퀘어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SK하이닉스의 기업 가치는 17조2400억원으로, 전체(24조1600억원)의 71.36%에 달한다. 상장사(드림어스컴퍼니·인크로스·나노엔텍 등, 17조5600억원) 몸값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비상장사(11번가·티맵모빌리티·콘텐츠웨이브·SK플래닛 등)의 총 기업 가치는 6조6000억원이다. SK하이닉스의 3분의 1 수준이다. 국내 이커머스 점유율 4위 11번가(2조2100억원)가 유일하게 조 단위다.
박정호 대표는 지난해 11월 SK스퀘어를 출범하면서 2025년까지 회사의 순자산가치(NAV)를 당시의 약 3배인 75조원으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반도체와 ICT에 공격적으로 투자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글로벌 ICT 투자전문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에서다.
이를 위해 SK텔레콤을 설립 37년 만에 두 회사로 쪼개고 황금알인 MNO(이동통신) 사업은 존속회사에 남겼다. 대신 자회사를 품었다. 이후 통신회사의 부가서비스 정도로 여겨졌던 콘텐츠와 보안 등 영역에서 체질 개선을 가속했다.
하지만 연초부터 증시에 먹구름이 끼며 난관에 봉착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과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한 중국의 봉쇄 정책으로 부품 공급망이 꽉 막힌 것도 모자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박이 심화했다.
자연스럽게 소비자들의 지갑은 닫혔다. 투자자들도 가능성보다 안정에 주력하는 전략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결국 SK스퀘어는 지난달 두 건의 IPO(기업공개) 시도에서 고배를 마셨다. 주가는 출범 때와 비교해 40% 이상 떨어졌다.
첫 타자는 보안 솔루션을 전문으로 하는 SK쉴더스(옛 ADT캡스)였다. 박정호 대표의 동생이자 SK텔레콤 CTO(최고기술책임자)를 역임했던 박진효 대표가 지휘하는 회사라 관심을 모았다.
융합 보안·스마트홈·무인화 등 신사업의 선전과 코로나19 비대면 수요가 맞물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10% 중반대의 탄탄한 성장세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기관투자자 수요 예측에서 예상을 밑도는 평가를 받아 상장을 철회했다.
뒤따르던 토종 앱마켓 원스토어도 상장을 연기했다. 마찬가지로 수요 예측 참여 기관들이 공모가를 하회하는 가격을 써낸 것으로 전해졌다.
원스토어는 구글·애플 양대 앱마켓의 앱 통행세(최대 30%) 갑질로 규제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상장 적기를 맞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경쟁 플랫폼 대비 저렴한 수수료 정책과 상생 노력을 어필했다. 이런 노력에도 암울한 증시 흐름을 역행할 수는 없었다.
"시기의 문제, 투자 확대될 것" 회사는 자회사 상장 실패가 중장기 투자 계획에 큰 타격을 주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SK스퀘어 관계자는 "지금 당장 상장하지 못한다고 해서 펀더멘탈(투자 여건)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향후 3년간 2조원의 투자 재원을 확보했으며, 해외 투자 유치도 추진 중이라는 설명이다. M&A(인수·합병) 시장에서는 고평가 기업을 좋은 조건에 인수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 조만간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올 것으로 내다봤다.
증권가도 SK스퀘어가 투자 사업 초기 성장통을 겪고 있을 뿐이라고 분석했다.
김장원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계열사 상장 철회는 시기의 문제"라며 "신성장 동력이 될 기업에 투자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정길준 기자 kjkj@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