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18세 이하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한국은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과 김광현(SSG 랜더스) 등이 나선 2006년에 이어 두 대회 연속 우승했다. 당시 성영훈(2009년 두산 베어스 1차지명)이 대회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가운데, 고교 4대 유격수로 평가받던 오지환(LG 트윈스)과 허경민(두산 베어스), 안치홍(롯데 자이언츠), 김상수(삼성 라이온즈)의 활약에도 이목이 쏠렸다. 당시 청소년 대표팀의 4번 타자가 바로 오지환이었다. 그는 결승타 2개를 포함해, 타율 .375 6타점 8득점으로 대표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LG는 2009년 1차지명으로 입단한 오지환이 '대형 유격수'로 성장하길 희망했다.
오지환이 '공격 본능'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14일 기준으로 올 시즌 61경기에서 타율 0.250 10홈런 35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홈런이다. KT 위즈 박병호(17개)가 홈런 부문에서 독주하는 가운데, 김현수(LG)·오재일(삼성·이상 11개) 등 공동 2위(총 5명)에 올라 있다. 쟁쟁한 홈런 타자 틈바구니에서 오지환은 공동 7위다. 2위 그룹과 불과 1개 차이다.
서울 잠실구장에서 그의 활약이 특히 돋보인다. 올 시즌 10개 구단 선수 중 잠실구장에서 가장 많은 7개의 홈런을 기록하고 있다. LG와 두산 선수 중 잠실구장에서 장타율이 0.457로 가장 높다. 두 번째가 두산 4번 타자 김재환(잠실구장 6홈런·장타율 0.438)이다.
오지환은 KBO리그에서 보기 드문 '홈런 치는 유격수'다.
어느 포지션보다 유격수는 수비가 훨씬 중요하다. 내·외야를 통틀어 처리하는 타구가 가장 많다. 수비 범위도 넓어 체력 소비가 크다. 오지환도 "항상 첫째는 수비라고 여겼다. 방망이는 덤이라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청소년대표팀 4번 타자를 맡을 만큼 '한방'을 갖춘 오지환은 늘 장타 욕심이 있었다. 그는 "1군 선수는 모두 수비력이 뒷받침되기 마련이다. 내가 1군에서 살아남으려면 장타력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절실했다"고 말했다.
오지환은 지난해까지 6차례나 한 시즌 두 자릿수 홈런을 돌파했다. 2016년에는 잠실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유격수로는 최초로 한 시즌 20홈런을 달성했다. 올 시즌은 가장 빠른 페이스로 홈런을 추가하고 있다. 오지환이 국내에서 가장 큰 잠실구장이 아닌 다른 구장을 홈으로 사용했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홈런을 쳤을 것이다. 바뀐 자리가 오지환의 공격 본능을 깨웠다. 오지환은 최근까지 2번 또는 하위 타순에 배치됐다. 하지만 LG가 지난겨울 4년 총액 60억원에 FA(자유계약선수) 박해민을 영입해 2번 타자 고민을 해결했다. 오지환은 5번으로 상향 배치됐다. 오지환은 "5번 타자로 들어서면서 동기부여가 됐다. 야구 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중심 타선에 포진하려면 장타력이 필요하지 않나"라며 "동료들이 앞에서 잘해주니, 난 뒤에서 장타를 치면서 해결하는 역할을 하기로 했다. 좋은 동료들 덕분에 홈런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올 시즌부터 주장까지 맡아 책임감이 커졌다. 선수단을 잘 이끄는 최고의 방법은 뛰어는 성과를 내닌 것이다. 그는 "팀에 영향력이 큰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오지환은 올 시즌 결승타 9개로 부문 1위를 질주하고 있다. 14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전에선 1-0으로 앞선 3회 말 3타점 2루타로 팀 승리를 견인했다. 그가 홈런을 때린 10경기 가운데 LG는 7경기를 이겼다. 그는 "예전에는 3안타를 쳐도 다음날에 다시 못 치는 날이 많았다. 타격에서 '퐁당퐁당'이 심했다"며 "올 시즌은 확실히 다르다. 상승세가 이어진다"고 반겼다. 김현수가 건넨 방망이 효과도 톡톡히 보고 있다. 오지환은 평소 무게 860~870g, 길이 33.5인치 배트를 썼는데 김현수가 건넨 것은 880~890g, 34인치다. 더 무겁고 더 길다. 그는 "웨이트 트레이닝 효과도 작용한다. 단순히 방망이 무게만 늘어나면 지칠 수 있어서 체력 훈련에 더 신경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지환은 "입단 14년 만에 처음으로 타격 욕심이 생겼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