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성은 지난해 KBO리그 골든글러브 수상자였다. 준족의 힘이 컸다. 시즌 46도루로 도루왕에 올랐고 실패는 단 4개에 불과했다. 타격에서도 데뷔 첫 3할 타율(0.304)을 기록, 리그 최고의 리드오프로 활약했다. 문제는 수비였다. 좌우는 물론 높이까지 넓은 수비 범위를 자랑했지만, 실책이 35개로 독보적 1위(2위 박찬호 24개)였다. 도쿄올림픽 국가대표에도 승선했으나 수비로 홍원기 감독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시즌 중 2루와 유격을 오갔고, 결국 올해는 풀 타임 2루수로 시즌을 소화 중이다.
현재까지 결과는 성공적이다. 공격에서 장점은 여전하다. 4일 기준 도루 28개로 독보적 리그 1위(2위 김지찬 19개)를 질주 중이다. 지난해와 달리 3할 타율은 기록하지 못하고 있지만, 투고타저 영향이 크다. 리그 환경을 보정한 wRC+(100을 리그 평균으로 보는 조정 득점 생산력)는 110.6으로 지난해(104.5)보다 높아졌다.
그런데 수비에서 안정감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넓어진 범위가 그대로인데 실책이 급격하게 줄었다. 올 시즌 김혜성은 문자 그대로 최고의 내야수로 활약 중이다. 시즌 절반을 넘긴 시점에서 686과 3분의 2이닝(내야 1위)을 소화했고 실책은 단 4개뿐이다. 내야안타를 포함한 처리%(스탯티즈 기준)도 96.42%(내야 1위)에 달한다. 지난해 실책 35개, 처리% 88.22%였던 모습은 더는 찾아볼 수 없다.
도루왕의 주력이 내야에서도 빛나준 덕분이다. 김일경 키움 수비 코치는 "김혜성의 수비 범위가 넓은 건 그의 운동 능력이 좋기 때문"이라며 "가지고 있는 스피드도 뛰어나 넓은 수비 범위를 선보이고 있다. 2루로 이동 후 송구 부담이 줄고, 포구에 더 집중하는 방향으로 수비해 좋은 캐칭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지난 주말 한화 이글스와 홈 3연전에서도 그의 수비가 돋보였다. 2일 경기에서 선발 2루수로 출전했던 그는 3회 초 1사 2루 상황에서 한화 김인환이 친 안타성 타구가 1루수 옆을 갈랐지만 쫓아가 땅볼로 바꿔냈다. 코스도 절묘했고 바운드도 쉽지 않았지만, 김혜성의 발과 판단력이 먼저였다.
3일 경기에서도 원숙해진 판단력이 빛을 발했다. 이날 경기에서도 2루수로 출전했던 김혜성은 4회 초, 1사 1·2루 상황에서 노수광의 2루 뜬공을 고의로 낙구했다. 심판의 인필드 플라이 콜이 들리지 않은 것을 놓치지 않고 땅볼로 만든 것이다. 떨어진 공을 잡은 그는 2루 주자 정은원을 먼저 포스아웃시킨 후 이어 1루 주자 이진영까지 포스아웃 처리해 이닝을 마무리했다.
김혜성을 상대했던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도 그의 수비를 인정했다. 수베로 감독은 "김혜성은 수비할 때 스타트가 굉장히 좋다. 주력 툴에 타구 읽는 능력이 더해져 스타트가 빨라졌다"며 "작년에는 주자로서 주루 플레이에 집중했다면, 올해는 2루로 옮긴 후 자신감 있는 플레이가 늘어난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