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마이컴퍼니 제공 시청자가 영화든, 드라마든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데는 그 안에 공감이 가는 캐릭터가 존재해서다. 아무리 나쁜 역할이라도 공감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가 된다. 넷플릭스 한국판 시리즈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종이의 집’)에서 인질을 붙잡고 수조 원의 돈을 훔치는 강도단들에게 마음이 갈 수 있던 것은 캐릭터 면면의 모습 때문일 터. 반대로 동정을 받아야 마땅한 인질임에도 극 안에서 욕받이가 된 캐릭터도 있다. 이 시리즈에서 시청자의 몰입을 조력한 역할은 북한 출신의 조폐국 부국장 황현호였다. 인질들 사이서 차분하고 성실하며 원리원칙을 지키며, 다 같이 살기 위해 애쓰는 인물로 나왔다. 이를 연기한 배우 홍인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인물이 딱 한명 있는데 그게 바로 현호”라고 했다.
-‘종이의 집’이 전 세계에 공개가 됐는데. “재미있고 신기하다. ‘종이의 집’은 작품 운이 좋았다. 새로운 연기, 역할을 시도하는 편인데 이번 작품은 일종의 시험대였다. 너무도 좋은 작품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캐릭터 연구는 어떻게 했나. “원작에 없는 캐릭터라 다른 배우들보다 부담은 덜했다. 리메이크 작품은 원래의 캐릭터를 구현함에 부담이 있기 마련이다. 없는 캐릭터를 연기해 오히려 재미있었다. 대본을 읽으면서 캐릭터 구상에 들어갔다. 공책에 캐릭터에 대해 메모를 한 뒤 불필요한 것들을 계속 지웠다. 다 지우고 남은 것들을 캐릭터에게 입혀본 뒤 연기했다.”
-황현호를 어떤 사람으로 해석했는지. “‘종이의 집’에는 선과 악이 뚜렷한 인물이 나온다. 그런데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인물이 딱 한 명 있다. 현호는 선과 악이 아닌 안전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뿐인 사람이다. 내가 느끼기에 현호는 밥도 잘 먹고 잘 지내는 사람으로 봤다. 그런 마음이 있어야 인질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나가려고 할 것 같았다. 안정된 마음은 가정에서부터 나온다 생각했다. 그래서 북한어 선생님에게 북한 사회나 북한의 가족 구성원, 북한 남자들이 가족들과 잘 어울리는 편인지 물어봤다.” 사진=넷플릭스 제공-북한 사람을 어떻게 연기하려 했나. “이질감이 들면 안 될 거라 생각했다. 사투리를 사용하는 역할은 어색하게 들리며 행동까지 어색하게 보일 수 있다. 역할을 처음 받고는 빨리 북한어 선생님을 알아봐달라고 부탁했었다. 선생님을 만나서는 죽자사자 괴롭혔다. 토씨 하나, 톤, 억양, 어조 등을 계속 따라 하며 배웠다. 북한 사투리로 1등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또 시선, 걸음걸이까지 선생님께 자문을 구했다. 부부가 같이 살면 닮는다고 하듯 이미지를 구축해 내가 아니라 캐릭터의 삶을 살려고 했다.”
-북한의 엘리트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이미지를 구축할 때 왠지 안경을 썼을 것 같았다. 4개 정도 안경을 준비했는데 확 꽂히는 게 없었다. 단골 안경원에 가서 이미지를 설명하고 무테를 추천받았다. 감독님께 금테와 무테를 들고 가 컨펌을 받아 무테안경을 착용했다. 일부러 살도 뺐다. 3kg 정도 뺐는데 캐스팅 후 2kg을 더 감량했다.”
-많은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는데. “촬영 당시 코로나19가 심할 때라 배우들끼리 교류가 거의 없었다. 촬영 일정에 지장을 줄 수 있어 따로 모이지도 않았다. 에피소드가 없는 현장이 거의 없는데 이 또한 에피소드다. 배우들과 친해지기까지 오래 걸렸다. 아, 세트가 일산 킨텍스 안에 있었는데 에어컨을 빵빵하게 잘 틀어 시원하게 촬영했다(웃음).” 사진=넷플릭스 제공-그래도 유난히 친했던 배우가 있지 않았나. “국장 역의 박명훈에게 맛집을 많이 알려줬다. 코로나만 아니면 같이 술이라도 한잔했을 텐데 같이 가지 못해 가족들과 가라고 지도 앱을 켜서 추천했다. 킨텍스 세트장 바로 앞에 부대찌개 식당과 수제 케이크 집을 추천했다.”
-기억나는 시청자 반응이 있다면. “내가 캐릭터에 대해 변태적인 면이 있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걸 즐긴다. 시청자 댓글 중에 ‘얘가 얘임?’ 이라는 반응이 많아 기분이 좋다. 이번에도 (역할이) 잘 살았구나 싶다.”
-많은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며 얻은 게 있다면. “작품을 촬영할 때마다 현장에서 빨대를 꽂을 수 있는 사람, 배워갈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저 사람의 연기가 나한테 맞는지 계속 관찰한다. 이번 현장에서는 (박)해수 형이었다. 하하하. 계속 형님을 보고 있으면 같이 합을 맞추지 않아도 어떻게 캐릭터를 준비하는지 공부가 됐다. 형님은 내가 보고 있었던 줄도 모를 거다.” 사진=마이컴퍼니 제공-현장에서 박해수는 어땠나. “촬영장에서 항상 책을 보고 계시더라. 쉬는 시간에도 대본 등 손에 책을 쥐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드라마 출연이 많지 않았는데. “드라마는 2018년 ‘나의 아저씨’가 처음이었다. 당시에 예술병이 들어서 영화만 하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친구인 배우 신성록이 어느 날 정곡을 찌르는 말을 했다. ‘영화 환경이 익숙해서 드라마가 두려운 게 아니냐’고. 맞았다. 드라마를 해보니 시야가 훨씬 넓어졌다. 신성록 덕분에 연기에 전환점을 맞았다.”
-‘종이의 집’도 무사히 공개됐는데 다른 고민이 있나. “연기나 다음 작품에 대한 고민은 매일 하는 고민이다. 개인적 고민이 하나 있는데 친형이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선물을 뭘 할까다. 과거 돈 없이 활동할 때도 용돈을 매일 보내주는 등 받기만 했다. 내가 잘 돼서 형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주고 싶다. 사실 연기 고민도 형의 지원을 받고도 못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다.”
-차기작 계획은. “열심히 작품을 찾고 있다. 캐릭터를 중점적으로 보고 있는데 재미있는, 배울 수 있는 역할이 뭐가 있을까를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