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영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은 두 시즌 반 동안 팀을 이끌었다. 창단 첫 13연패와 정규시즌 9위라는 성적표를 남기고 떠났지만, 그의 유산은 1군 선수단에 남아있다.
삼성 주전 내야수로 성장한 김지찬(21)도 그중 한 명이다. 김지찬은 2020년 프로에 입단하자마자 바로 1군에 데뷔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기회였다. 삼성은 그를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15순위로 지명했다. 키(1m63㎝)가 작지만, 재능을 높게 평가해 '얼리 픽'을 망설이지 않았다.
과감한 지명 다음 과감한 기용이 이어졌다. 당시 신임 사령탑이었던 허삼영 전 감독은 그를 '키워야 할 선수'로 판단했다. 첫해에만 무려 135경기에 출전했다. 당시 성적이 타율 0.231 1홈런 13타점 47득점 21도루 OPS(출루율+장타율) 0.573에 불과했다. 성적이 부진해도 아낌없는 기회를 받았다. 1군 등록일수가 179일에 달한 김지찬은 2루·3루·유격수뿐 아니라 중견수로도 출전했다.
기회는 2년 차에도 이어졌다. 정규시즌 120경기 타율 0.274 1홈런 26타점 50득점 23도루 OPS(출루율+장타율) 0.635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1군 등록일수가 173일에 달했다. 부상이 아니라면 김지찬이 1군을 떠나는 일이 드물었다.
허삼영 전 감독의 믿음과 배려는 김지찬이 성장하는 밑거름이었다. 그는 올 시즌 63경기에서 타율 0.274 17타점 38득점 21도루 OPS 0.692를 기록하고 있다. 첫해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 -0.71(스포츠투아이 기준)로 부진했던 그는 지난해(0.46)에 이어 올 시즌(1.25)에도 성장세를 이어갔다. 부상으로 누적 기록이 적은 걸 고려하면 다음 시즌에는 WAR 3 이상까지도 기대할 수 있는 페이스다.
그런 김지찬에게 허삼영 감독의 자진 사퇴는 무겁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2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만난 김지찬은 “허삼영 감독님은 내가 신인으로 입단했을 때 감독으로 오셨던 분이다. 내게 많은 기회를 주셨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도 감독님 덕분이다. 항상 감사하다”라며 “어제 사퇴하셨다는 기사를 보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남은 시즌 감독님이 계시지 않더라도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왼쪽 햄스트링 부상을 회복하고 돌아온 김지찬은 이제 반전을 노린다. 그는 "부상으로 내려가 있는 동안, 매일 야구를 봤다. 야구를 안 하니 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지더라. 팀 성적이 좋지 않은데 (부상으로 빠진 탓에) 지켜만 보고 있어야 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빨리 복귀해서 뛰고 싶은 마음이 컸다"며 "선수들은 계속 뛰어왔지만 나는 한 번 쉬고 왔다. 다른 선수들보다 체력을 회복하고 왔다. 더 열심히 하고, 더 많이 뛰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