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아한 세계’, ‘관상’, ‘더 킹’을 연출한 한재림 감독이 항공 재난 영화 ‘비상선언’으로 돌아왔다. 한재림 감독은 묘하게 현실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을 만나왔다. 이번에는 코로나19 시대의 압축판이라 할 수 있는 시의적절한 재난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펼쳤다.
지난 3일 개봉한 ‘비상선언’은 사상 초유의 항공 테러로 무조건적 착륙을 선포한 비행기와 재난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칸 국제영화제 월드 프리미어에서 첫선을 보이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고, 국내에선 개봉 당일 경쟁 영화들을 제치고 예매율 1위에 올랐다.
시나리오 초고를 받고 10년. 칸 국제영화제 이후 1년. 상당한 기다림을 거친 ‘비상선언’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 한재림 감독이 직접 입을 열었다. -영화 개봉 소감은. “몇 년 만에 개봉하게 됐다. ‘비상선언’으로 작년에 칸 영화제에서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나서 리뷰를 들었던 터라 또 한 번 개봉하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한국 관객들과 만난다는 게 설렌다.”
-개봉 당일 전체 예매율 1위로 시작했다. 흥행감은 어떤가.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할 때만 해도 코로나 시국이 올지 전혀 몰랐다. 우리 영화가 시기적으로 (코로나 시국과) 비슷한 갈등을 담고 있다. 관객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잘 모르겠다. 흥행에 대해서는 예측이 어렵다. 나도 많이 떨리고 설렌다. 다만 많은 관객이 우리 영화의 의도를 즐겁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임시완의 어떤 면을 보고 캐스팅했나. 주로 디렉팅한 부분이 있다면.
“드라마 ‘미생’을 재미있게 봤고, 그때 장그래 역을 보면서 ‘저렇게 올바르고 착한 사람이 있구나’ 싶었다. 진석 역을 캐스팅하려고 생각해보니 ‘싸이코패스 범죄자지만 아무것도 아닌 착해 보이는 사람이 하면 어떨까?’ 싶더라. 그래서 임시완을 떠올렸다. 가장 크게 디렉팅한 건 본인을 범죄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일상적인 연기를 해달라고 했다. 리허설할 때 최대한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보여주려고 했다.”
-송강호와는 세 번째 호흡이다. 이번 작업은 어땠나. “‘비상선언’ 시나리오를 작업할 때 송강호가 안 하면 작품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지상에서의 인호(송강호 분)를 단순하게 표현하면 안 될 것 같았다. 평범한 플롯을 가는 캐릭터가 얼마나 호소력 있게 표현되느냐에 따라 전체적인 이야기의 균형이 잡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 작품도 송강호와 작업하고 싶었다. 송강호에게 의지를 많이 했다. 송강호는 배우이기도 하지만 현장에서는 어른이고 심리적으로 기댈 수 있는 사람이다.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많은 의지가 됐고 편안하게 이야기도 나눴다.” -기술적인 완성도가 높다는 평이 있다. 연출에 중점을 둔 부분이 있나. “포인트는 사실감이었다. 모두가 타 본 비행기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은 어려움이 있었다. 또 위기감을 그려내기 위해 (비행기를) 짐벌로 돌려야 했고, 승객 역의 배우들이 연기해야 했고, 또 그걸 카메라로 잡아내야 했다. 할리우드는 (촬영할 때) 실제로 감독이 타지 않는데 우리는 사실감을 주기 위해 촬영 감독들이 타서 찍었다. 그런 수고들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특수효과 팀, 촬영 팀, CG 팀이 혼혈 일체가 되어야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 감독으로서 느끼는 조명, 질감 등 아쉬운 부분들이 많이 남았다.”
-후반부 극렬한 양분화 현상이 사실적으로 그려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렇게 표현한 의도가 있나. “마음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우리에게 피해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구체적 사실이 아닌 은유적으로 생각해보면 인간이 가진 두려움을 극복해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너무 많은 반전에 후반부에는 피로감이 쌓인다는 평도 있다. “어떤 영화를 기대한 것인가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영화를 재난 영화의 범주 안에서 봐줬으면 한다. 반전이 있다고 하지만 비행기라는 것은 항로가 있다. 그 항로를 따라서 돌아오게 돼 있다. 의도를 가진 것도 아니고 극적인 반전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 사실적으로 접근하려고 했다. 수많은 변화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비상선언’을 본 관객들에게 듣고 싶은 말과 영화를 통해 이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힐링이다. 관객들에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힐링하는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싶다. 재난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인호를 비롯한 모든 인물이 보여주는 아주 작은 인간성, 조금의 용기다. 인간이 재난 앞에 두렵고 힘들 수 있지만, 자기에게 성실한 것이 모인다면 재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