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36)는 지난해 12월, KT 위즈와 FA(자유계약선수) 계약 후 두 가지 목표를 전했다. 이전 두 시즌(2020~2021) 부진을 털어내는 것과 새 소속팀 KT의 통합 우승 2연패를 이끄는 것.
프로 데뷔 뒤 한 번도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한 박병호는 "디펜딩 챔피언 KT의 유니폼을 입은 만큼 꼭 2연패에 도움이 되고 싶다"며 우승을 향한 염원을 감추지 않았다.
박병호는 에이징 커브(일정 나이가 되면 운동 능력이 저하되며 기량이 하락하는 현상) 우려를 딛고 재기했다. 홈런 부문 1위(33개)를 달리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지난 10일 키움 히어로즈전 주루 중 오른발목 부상을 당하는 암초를 만났다. 검진 결과, 인대 파열 진단을 받았다. KT는 팀 전체 홈런(103개)의 32%를 혼자 책임졌던 박병호의 이탈로 고민이 커졌다.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았다.
이강철 KT 감독은 박병호가 부상을 당한 다음날(11일) "아무래도 올 시즌에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박병호는 수술을 받지 않고 재활 치료를 선택했다. 포스트시즌(PS)에 꼭 출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병원에서는 복귀까지 4주가 소요될 것이라는 소견을 전했다.
KT는 14일 기준으로 70승 2무 55패를 마크, 리그 4위에 올라 있다. 6위 NC 다이노스에 11.5경기 앞서있다. PS 진출은 확정적이다. 젊은 선수라면 수술을 받고 부상 부위를 다스리는 게 순리겠지만, 선수 생활 황혼에 있는 박병호는 당장 올 시즌 가을야구가 절실했다. 구단도 "재활 경과를 보고 PS 출전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13일 발표된 잔여 경기 일정에 따르면 정규시즌 최종전은 내달 8일이다. 4·5위가 맞붙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은 통상적으로 이틀 뒤 열린다. 10월 10일 PS 첫 경기가 열릴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박병호가 문제없이 발목 부상을 회복하면 딱 복귀할 수 있는 일정이다. KT로서는 정규시즌 3위에 올라 준플레이오프(PO)로 직행하는 게 이상적이다. 그래야 가을야구 첫 경기를 늦게 시작할 수 있다. 박병호가 회복할 시간을 며칠이라도 더 벌어줄 수 있다는 얘기다. 준PO는 10월 13일 개막할 가능성이 크다.
KT는 2020년에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팀 리더였던 박경수가 정규시즌 종료를 3주 앞두고 오른쪽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고 전치 4주 진단을 받은 것이다.
당시 KT·LG 트윈스·두산 베어스·키움 히어로즈가 정규시즌 2위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KT 선수들은 이전까지 한 번도 PS 무대를 밟지 못한 박경수를 위해 똘똘 뭉쳤다. 한 단계라도 높은 순위로 정규시즌을 마쳐야, 박경수가 완치하고 돌아올 시간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강철 감독도 박경수에게 "꼭 함께 PS에 나가자"고 독려했다. 결국 KT는 정규시즌 2위에 올랐고, 박경수는 두산과의 PO 1차전에 출전, 역대 PS 최고령(만 36세 7개월 9일) 첫 출전 기록을 세웠다. 경기에선 수차례 허슬 플레이를 보여줬다.
KT는 올해도 팀 리더였던 박병호가 정규시즌 막판 악재를 만났다. 박병호는 이런 상황에서 재활 치료를 선택하며 투혼을 보여주고 있다. 팀 후배들의 투지를 자극할만하다. KT가 박병호와 함께하는 PS를 치를 수 있을까. KT는 '어게인 2020'을 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