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빈(23·두산 베어스)이 던지는 강속구가 드디어 스트라이크존에 자유자재로 꽂히기 시작했다.
곽빈은 올 시즌 6승 8패 평균자책점 3.69를 기록 중이다. 승운은 따르지 않지만, 모든 성적이 지난해(4승 7패 평균자책점 4.10) 이상이다. 특히 후반기로 좁히면 평균자책점이 2.21로 특급이다. 실점만 적은 게 아니라 후반기 여섯 경기에서 모두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달성했다. 말 그대로 '에이스 모드'다.
결과보다 좋은 건 과정이다. 곽빈은 재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지난해에도 선발 투수로 시즌을 소화했다. 21경기에 나와 19경기에서 3실점 이하를 기록했다. 비교적 적게 실점했으나 제구 난조로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9이닝당 볼넷 7.21개로 그해 규정 이닝 50% 이상 투수 중 1위를 기록했다. 변화구는 물론 직구조차 스트라이크를 장담하지 못했다.
반면 올 시즌은 직구와 변화구 모두 능수능란하게 스트라이크를 꽂고 있다. 6승을 거둔 지난 14일 잠실 LG 트윈스전에서는 6과 3분의 2이닝 동안 무실점 6탈삼진을 기록했다. 최고 시속 155㎞를 기록한 직구로 잡은 삼진은 2개뿐이었다. 대신 커브(3개)와 고속 슬라이더(1개)가 고루고루 결정구 역할을 했다. 특히 로벨 가르시아를 상대로 커브를 던져 루킹 삼진 두 개를 잡아낸 장면은 이날 투구의 백미였다. 지난해 실험했던 포크볼을 버리고 반대쪽 타자를 잡는 구종으로 체인지업에 집중한 게 효과를 보고 있다.
제구가 향상되자 볼넷이 급감했다. 곽빈의 올 시즌 9이닝당 볼넷은 4.13개다. 여전히 많은 편이지만, 지난해 절반 수준이다. 후반기로 좁히면 2.43개로 다시 그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다. 지난해 55.6%였던 스트라이크 비율이 올해 후반기로 좁히면 66.5%까지 증가했다. 문자 그대로 환골탈태 수준이다. 변화구 구사가 달라진 점을 묻자 김태형 두산 감독과 포수 박세혁 모두 "원래 변화구를 잘 던졌던 투수"라고 답했다. 지난해 난조는 재활 과정에서 생긴 투구 감각의 문제였던 셈이다.
곽빈은 "지난해는 너무 오래 쉬다가 돌아와 경기 감각이 떨어진 시즌이었다"면서도 "욕심도 많았다 내가 던지는 날에는 무조건 이겨야 하고, 승리 투수가 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런데 그 욕심이 조금씩 사라졌다. 이닝을 많이 던지고, 선발 투수의 책임을 다하겠다고만 생각하니 투구 내용이 조금씩 좋아졌다. 작년보다 올해가, 올 시즌 전반기보다 후반기가 더 좋아진 것도 그런 이유 같다"고 말했다.
곽빈에게는 자극제가 하나 더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 키움 히어로즈 안우진이다. 올 시즌 13승 7패 평균자책점 2.09 196탈삼진을 기록 중인 그는 잠재력을 만개하고 리그 대표 에이스로 성장했다. 곽빈은 지난해 와일드카드 1차전에서 그와 맞대결을 펼친 후 "가장 친한 친구와 포스트시즌 맞대결을 펼쳤다.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기회가 아닐까. 이렇게 어린 나이에 정말 좋은 기회를 경험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곽빈은 "투구하다가 답답할 때는 우진이한테 많이 물어본다. 우진이도 나를 보고 많이 답답해하더라"고 웃으면서 "나에게 '좋은 공이 있는데 왜 풀카운트에 자주 몰리고 피해가느냐. 바보 같다'고 하더라. 우진이 경기를 챙겨 보는데 나랑 다른 야구를 하고 있더라. 많이 보고 공부하면서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그 덕분일까. 곽빈의 후반기 성적과 제구는 안우진(평균자책점 2.23 스트라이크 비율 65.9%)과 흡사해졌다.
두산의 성적은 19일 기준 9위로 떨어져 있다. 그러나 남은 시즌을 향한 곽빈의 의지는 여전히 뜨거웠다. 그는 "올해는 내년을 더 좋은 시즌으로 만들기 위한 시발점"이라며 "두산은 내년에도 이렇게 될 팀이 아니다. 내년에는 더 올라갈 팀이란 점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