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NC 다이노스의 경기. 6회 초 수비가 끝난 직후, 더그아웃에 있던 류지현 LG 감독이 손뼉을 치며 그라운드로 나왔다. 이어 한 선수에게 악수를 건넨 뒤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사령탑의 환대를 받은 선수는 선발 투수로 나선 김영준(23)이었다. 그는 올 시즌 처음으로 1군 마운드에 오른 이날 6이닝 4피안타 5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LG는 이 경기에서 0-2로 패했지만, 김영준은 당찬 투구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튿날 만난 류지현 감독은 "위기관리, 공 배합, 변화구 제구 등에서 김영준이 빼어난 투구를 보여줬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마운드 위 태도였다. 위풍당당(풍채나 기세가 위엄 있고 떳떳함)이라는 말이 딱 떠올랐다"며 김영준의 투구를 극찬했다. 그라운드에까지 나와 격려한 이유에 대해서는 "그동안 퓨처스(2군)리그에서 묵묵히 준비해준 선수다. '고맙다'는 뜻을 전하고 싶었다"라고 답했다.
김영준은 특급 유망주였다. 2018년 안우진(키움 히어로즈), 곽빈(두산 베어스)과 함께 서울 연고 3개 팀의 1차 지명 선수로 함께 이름을 올렸다. 어깨를 나란히 했던 동기들이 주축 투수로 자리 잡는 동안 김영준은 잊혔다. 입단 첫 시즌(2018년) 14경기에 등판했지만, 경쟁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이듬해에는 군 복무를 선택했다.
지난해 5월 팀에 복귀했지만, 투수진 뎁스(선수층)가 두꺼운 LG에서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했다. 올해는 정식 선수가 아닌 육성선수 신분으로 시즌을 맞이하기도 했다.
김영준은 묵묵히 기량을 닦았다. 자신의 제구력이 프로 무대에서는 통하지 않는 수준이라고 판단, 투구 밸런스와 멘털을 다잡기 위해 노력했다. 구종도 늘렸다. 입대 전에는 포심 패스트볼(직구)·슬라이더·커브·포크볼만 구사했지만, 지난 1년 동안 컷 패스트볼(커터)과 체인지업, 투심 패스트볼을 연마했다.
김영준은 "육성선수로 시작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속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차피 프로 무대가 냉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실력을 보여준다면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악착같이 야구를 했다"고 돌아봤다.
긴 기다림 끝에 기회가 왔다. LG는 포스트시즌을 대비해 선발 투수들에게 하루라도 더 휴식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지난 2일 NC전에도 대체 선발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덕분에 김영준은 2018년 10월 13일 이후 약 4년 만에 1군 무대에 섰다. 그리고 고교 시절 인정받던 잠재력을 드러냈다.
김영준은 "(2일 NC전) 6회 초 2사에서 타자(정진기)를 삼진 처리한 뒤 나도 모르게 큰 세리머니를 했다. 지난 4년 동안 겪은 일들이 생각나서인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이어 "내가 등판한 경기 중계방송을 다시 보는데, 캐스터님이 '김영준의 야구는 오늘부터 시작'이라는 멘트를 하더라. 정말 기억에 남았다. 직구 구속과 제구가 더 좋아져야 한다. 더 노력해서 언젠가 선발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싶다"는 각오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