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평가 척도에서 WAR(대체 수준 대비 승리 기여도)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지표가 됐다. 서로 다른 포지션과 시즌에서 활약한 선수를 일관된 하나의 숫자로 평가할 수 있다는 편의성, 작은 단위의 숫자로 표현되어 외우기 쉽다는 직관성,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지표로써 접근성 덕분이다. 여러 장점에 힘입어 WAR은 세이버메트릭스를 대표하는 지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WAR이 선수 평가의 참고 지표 정도를 넘어 오남용되는 사례가 벌어지고 있다. 야구팬들의 선수 줄 세우기 기준에 WAR만을 활용하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방송에서는 WAR 지표 하나만을 콕 집어 선수들을 평가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WAR 지표의 장점이 역으로 다른 훌륭한 지표들을 무시하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WAR은 타율이나 출루율처럼 통일된 기준이 없기에 무작정 신뢰할 수는 없는 지표다. 실제 2022시즌 KBO리그에서 훌륭한 성적을 거둔 선수들의 WAR은 산출 기관별로 크게는 1~2가량 차이를 보인다. 여러 기준에 따라 같은 선수를 두고도 서로 다른 값이 내놓고 있다.
이유가 있다. 우선 WAR의 어원인 '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에서 '대체 선수'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 대체 선수란 1군과 2군을 오가는 비주전선수로 이따금 주전 자리가 빌 때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의 실력을 갖춘 선수를 의미한다. 이들은 각 리그에서 최저연봉 수준의 임금을 받고, 언제든지 타팀으로의 이적과 영입이 가능하다. 바로 이들이 WAR 0의 값을 가지며 WAR 계산의 기준이 된다. 훌륭한 팜 시스템과 많은 인구, 엄청난 시장 규모에 힘입어 선수 수급이 수월한 미국은 WAR 지표의 기준으로 대체 선수를 내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대체 선수의 정의는 대단히 추상적이다. 타율, 출루율, 평균자책점 등 일정한 기준이 없고 리그 상황에 따라 유동적인 개념이다. 특히 메이저리그(MLB)에 비해 대체 선수 수급이 어려운 KBO리그 환경에서의 대체 선수 기준은 더욱 모호해진다. 이에 반해 WAR 계산 방식은 MLB의 것을 그대로 가지고 왔다. KBO리그의 WAR은 출발점부터 신뢰도에서 감점을 받았다.
그렇다면 '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에서 '승리 기여도'는 어떨까? WAR 계산을 위해서는 우선 타자, 투수, 수비수, 주자로서 리그 평균에 비해 팀에 기여한 정도인 리그 평균 대비 득점 기여도(RAA)가 필요하다. RAA을 활용해 '대체 선수' 대비 팀에 기여한 점수(RAR)를 계산한다. 이후 피타고리안 계산법을 활용해 RAR을 승리로 환산하면 WAR을 산출할 수 있다.
그런데 RAA 계산을 위해 활용하는 지표가 산출 기관별로 제각각이다. 타격기여도 측정은 대체로 선형방법론을 기반으로 한 가중 출루율(wOBA)을 이용한다. 하지만 이외의 영역에서는 기관별로 각기 다른 지표를 활용한다. MLB의 WAR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대표적인 2개 기관(베이스볼 레퍼런스, 팬그래프)의 WAR인 bWAR, fWAR 역시 기준이 다르다.
투수 기준 bWAR은 실책으로 인한 비자책점을 포함한 전체 실점(RA9)을 평가 기준으로 한다. 반면 fWAR은 비자책점과 수비의 영향을 제거하여 삼진, 홈런, 볼넷으로만 구성된 수비 무관 평균 자책점(FIP)을 활용한다. 같은 투수라도 전체 실점에서 비자책점 비중이 크거나 피홈런의 비중이 낮은 선수일수록 fWAR의 평가는 bWAR에 비해 우수하다. 수비 기여도 척도 또한 DRS(디펜시브 런 세이브), UZR(얼티메이트 존 레이팅)로 나뉜다. 두 수비 지표는 평가를 위해 그라운드 구획을 나누는 방법, 수비 위치별 파크팩터 적용 범위, 선수 간 수비 활약을 비교하는 데이터의 표본 크기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외의 피타고리안 승률 활용 정도, 파크팩터 반영 범위, 포수 평가 등 WAR의 다양한 구성 변수가 산출 기관별로 제각각이다. KBO리그도 마찬가지로 스탯티즈, KBreport, 스포츠투아이의 WAR이 서로 다른 지표를 활용한다. 위의 그래프가 같은 선수를 두고도 WAR 값에 차이를 보이는 이유이다.
한편 수비 기여도 측정은 WAR의 또 다른 골칫거리이다. 일단 타석에 들어서면 측정할 수 있는 타격 능력과는 다르게 수비 능력 측정은 타구가 본인 근처로 날라왔을 때 가능하다. 수비 기회는 타격 기회에 비해 꾸준히 주어지지 않는다. 타격 기회에 비해 수비 기회의 횟수가 적어 충분한 표본 크기를 확보할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
특정 수비가 훌륭했거나 형편없다고 평가할 기준도 모호하다. 타격 결과는 아웃/루타/홈런/볼넷 등으로 확실히 구분 지을 수 있다. 그러나 수비 평가 기준은 수비 범위, 포구 능력, 송구의 정확성과 빠르기 등으로 나뉜다. 타격 결과처럼 범주화하여 구분하기 어렵다. 게다가 타구 추적 시스템인 트랙맨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사람이 직접 눈으로 수비 상황을 지켜보면서 주관적인 평가를 해야 한다.
이 때문에 KBO리그 산출 기관들은 수비 측정에 애를 먹는다. 가령 스탯티즈는 수비 기여도를 포함한 타자 WAR 이외에 수비 기여도를 제외하고 포지션 보정만을 추가한 타자 WAR*를 별도로 제공하고 있다. WAR 산출 기관조차도 본인의 수비 평가에 100%의 확신이 서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WAR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앞서 언급한 팬그래프의 지침을 참고할 만하다. 팬그래프는 WAR 차이가 크지 않은 두 선수의 우열을 가릴 때 소수점 아래에서의 차이는 고려 대상이 아니고, 수비 능력이 주된 선수의 WAR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KBO리그에서 똑같은 정상급 외야수지만, 이정후와 나성범은 대체로 2 이상의 WAR 차이를 보인다. 이 경우에는 이정후가 확실하게 더 뛰어난 선수라고 확신할 수 있다. 그러나 소수점 범위의 WAR 차이를 보이는 김광현과 에릭 요키시의 우열은 WAR로 가릴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뛰어난 수비로 WAR의 상당한 부분을 채운 박해민과 최지훈의 WAR도 100% 믿기는 어렵다.
WAR은 훌륭한 선수 평가 지표다. 그러나 전가의 보도는 아니다. WAR의 소수점 단위 하나하나에 필요 이상의 의미부여를 삼가고, WAR 이외의 다른 훌륭한 지표들도 함께 참고하는 것이 WAR의 올바른 사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