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 전 50이 넘은 나이에 프로복싱 복귀를 선언해 큰 화제를 모았던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은 어느날 2000만달러라는 거액을 제시받았다. 타이슨에게 이같은 파격적인 조건을 제안한 단체는 '베어 너클 파이팅 챔피언십'(이하 BKFC)이라는 격투기 단체였다. BKFC는 타이슨이 계약을 받아들이면 UFC 전 챔피언 반더레이 실바(브라질)와 대결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이 단체는 '베어 너클'이라는 이름대로 글러브를 끼지 않고 맨주먹으로 싸우는 단체다. 선수들은 손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붕대(밴디지)만 엄지와 손목에 감고 경기에 임한다. 당연히 경기는 위험하고 폭력적이다. 부상은 기본이다. 맨주먹에 맞은 선수는 물론 때린 선수 조차 손가락이나 손목 골절을 입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BKFC는 글러브를 끼지 않고 맨주먹으로 싸우는 격투기 단체다. [BKFC 홈페이지] 지난해 8월에는 격투기 전적 24전 경력을 가진 저스틴 손튼이라는 선수가 경기 도중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 상대 선수의 강한 오른손 펀치를 허용한 손튼은 정신을 잃고 앞으로 쓰러졌다. 이 과정에서 머리가 바닥에 부딪히는 큰 사고를 당했다.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경추 신경 손상으로 끝내 세상을 떠났다.
맨주먹 격투기는 엄청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타이슨 같은 거물에게 거액의 대전료를 제의할 정도로 최근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BKFC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선수 숫자만 놓고 보더라도 남녀 통틀어 1000명이 훨씬 넘는다. 대부분은 무명 선수들이지만 프랭크 미어, 헥터 롬바드, 티아고 실바, 휴스턴 알렉산더, 지미 리베라, 마이크 페리 등 UFC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선수들도 제법 된다. 일본 입식타격기 K-1 경량급에서 최강자로 군림했던 태국의 쁘아카오 벤차멕(예전 쁘아카오 포프라묵)도 BKFC에 참가했다.
원래 주먹은 도구가 없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강력한 무기다. 중국 청나라 말기에 반외세를 외쳤던 의화단은 서양의 총, 대포를 상대로 중국 무술을 기반으로 한 맨주먹으로 맞섰다. 그래서 이들을 '권비(拳匪)' 또는 '권민(拳民)'이라고 불렸다. '拳(권)'자는 한자로 '주먹', '주먹을 쥐다'를 의미한다. 권투, 철권 같은 단어에 쓰인다.
복싱이 처음 나왔을 때도 당연히 맨주먹 싸움이었다. 1800년대 맨주먹 복싱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가관이다. 경기장 사방에 피가 튀었고 사망자나 부상자가 속출해 계속 들것이 왔다갔다 했다. 경기장 주변에는 경기 결과를 놓고 돈을 거는 도박이 펼쳐졌다. 돈 많고 권력을 가진 상류층 인사들은 실력이 좋은 선수의 스폰서가 되기도 했다.
맨주먹 복싱이 사라진 것은 너무 잔인해서다. 선수들이 계속 세상을 떠나거나 장애가 남는 큰 부상을 당하자 당시 영국 치안 법원이 개입해 경기를 중단시켰다.
그런 배경에서 등장한 것이 글러브였다. 선수 보호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자 1867년 영국의 퀸즈베리라는 후작이 자신이 주최한 대회에 '솜을 넣은 글러브를 착용하지 않으면 경기에 나설 수 없다'고 규칙을 만들었다. 이후 글러브 관련 규정을 일컬어 '퀸즈베리 규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복싱 및 격투기에서 글러브가 사용되면서 선수들의 안면 및 손가락 골절 부상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가죽으로 겉을 만든 글러브가 널리 사용되다가 오늘날에는 합성수지나 젤 형태의 글러브가 제작된다. 글러브 안쪽 솜은 말 꼬리인 '말총'이 사용되는데 주먹의 힘을 전달하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종합격투기에선 그라운드 기술도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복싱 글러브 보다 훨씬 작고 가벼우면서 손가락 부분에 구멍이 뚫린 오픈핑거글러브를 사용한다. 오픈핑거글러브는 종합격투기를 통해 일반화됐지만 제법 오랜 역사를 갖는다. 이소룡이 영화 '용쟁호투'에서 오픈핑거글러브를 끼고 액션을 펼치기도 했다.
현대사회는 문명화되고 인간의 존엄성이 더 강조된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 맨주먹 싸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이는 더 강렬한 자극을 원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과 무관하지 않다. 낡은 제도를 타파하고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인간의 욕구는 맨주먹 격투기의 불씨가 됐다.
달라진 미디어 환경도 불을 지폈다. BKFC는 2020년 8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DAZN과 파트너십을 맺고 경기를 유료 중계하기 시작했다. 1년에 40~50달러 정도를 내면 경기를 직접 시청할 수 있다. 성장 가능성에 주목한 미국 동영상 플랫폼 트릴러는 올해 2월 이 단체를 아예 인수했다. 현재 BKFC는 미국 내 14개 주에서 합법화돼있다.
맨주먹 격투기 신봉자는 오히려 글러브를 끼고 하는 실제 복싱이나 격투기보다 머리에 더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실제 워싱턴주립대 연구진은 "사람이 맨주먹으로 가격하는 것보다 글러브를 끼고 때릴 때 뇌손상 위험이 17.9%가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맨주먹 격투기를 스포츠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몸이 깨지고 출혈이 낭자하는 이 종목에 대한 거부감도 높다. 그래도 폭력성과 잔인함을 쫓는 인간의 특성상 관심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맨주먹 격투기가 계속 지속될까라는 질문에는 물음표가 남는다. 선수를 보호할 제도적 장치가 더 강화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맨주먹 격투기 신봉자는 오히려 글러브를 끼고 하는 실제 복싱이나 격투기보다 머리에 더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실제 워싱턴주립대 연구진은 "사람이 맨주먹으로 가격하는 것보다 글러브를 끼고 때릴 때 뇌손상 위험이 17.9%가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맨주먹 격투기를 스포츠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몸이 깨지고 출혈이 낭자하는 이 종목에 대한 거부감도 높다. 그래도 폭력성과 잔인함을 쫓는 인간의 특성상 관심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맨주먹 격투기가 계속 지속될까라는 질문에는 물음표가 남는다. 선수를 보호할 제도적 장치가 더 강화되지 않는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