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참가했던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리는 사상 첫 원정 16강에 진출했다. 대표팀 목표는 항상 16강 진출이었다. 하지만 2014 브라질, 2018 러시아 대회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위기의 순간에 카타르에서 16강을 이뤄낸 후배들이 너무 멋지다. 2002년 거스 히딩크 감독처럼, 2022년 파울루 벤투 감독이 다시 한번 축구로 한국을 뒤집어놨다.
12년 전과 비교를 해보자면, 선수들의 개인 기량이 월등히 좋아졌다. 세계 어느 팀과 견줘도 밀리지 않는다. 이전 한국 축구는 ‘악착같이 뛰는 스타일’이었지 않나. 이번에는 긴 패스 위주의 '힘 있는 축구'보다 짧은 패스 축구를 했다. 축구에 정답은 없다지만, 빌드업·전방 압박·중원 싸움 등 현대 축구의 추세에 잘 따라갔다. 한국이 아시아를 대표해 이렇게 발전했다는 게 축구인으로서 너무 감사하다.
자, 이제는 16강전이다. 내 경험상 선수들은 16강 진출이라는 목표를 이뤄 안도했을 것이다. 그런데 월드컵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최고의 수준에 있는 선수들 아닌가. 안도는 하루 만에 끝났을 것이다. 벤투 감독과 코치진이 ‘다시 한번 기적을 만들어보자’라는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다. 브라질을 만나게 됐지만, 축구공은 둥글다. 어떤 일이든 벌어진다.
한국 전력이 브라질에 비해 열세인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브라질은 선발 라인업을 모두 교체해도 매우 수준 높은 선수들이다. 예비 명단으로 50명을 차출해도 이 선수들은 각 리그 에이스다. 달라지는 건 없다. 우리는 우리의 축구를 해야 한다. 이기고 지는 게 문제가 아니다. 조별리그에서 우리가 했던 축구로 똑같이 맞붙어야 한다.
브라질은 카메룬과 조별리그 3차전(0-1 패)에서 로테이션을 가동했다. 조 1위가 확정이었을 테니,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 반면 한국은 1~3차전을 전력으로 뛰었다. 브라질은 한국 선수들이 체력이 바닥났다는 부분을 알고 있다. 브라질은 경기 초반부터 강하게 압박해 이른 시간 선제 득점을 노릴 것이다. 리드를 빼앗기면 한국이 급격하게 무너진다고 판단할 것이다.
초반에 더 집중해야 한다. 90분 내내 뛰어야 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선수들의 경기력이 빠르게 떨어질 것이다.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브라질을 상대하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고 본다. 경기 초반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브라질은 토끼이고, 우리는 거북이다. 토끼가 쉬엄쉬엄할 때 한 방의 득점으로 분위기를 잡아야 한다.
포르투갈전에서 선수들은 과감하게 플레이하고 싶어 했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더라. 이미 1·2차전에서 120%의 힘을 쏟았기 때문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전반이 끝나기 전에 김영권이 동점 골을 만든 게 컸다.
우리 선수들은 컨디션이 저하된 상태에서 브라질전을 치른다. 조규성도 자신이 원하는 만큼 높이 뛰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 선수들은 조별리그 내내 상대보다 한 걸음 더 뛰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우리가 상대보다 약해. 하지만 열심히 뛴다면 잡을 수 있어’라는 마음가짐이 열정적으로 뛸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동료를 위해 희생하는 정신도 돋보였다. 브라질전에서도 서로 돕고 의지한다면 못 할 게 없다. 후회 없는 한판 대결을 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