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국내 부동산 시장은 혼란기였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던 주택 매매 가격이 잇따른 기준금리 인상 및 각종 규제와 맞물리면서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른바 '고점'에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산 '영끌러'들은 금리를 감당하지 못해 신음하고 있고, 무주택자는 내 집 마련의 꿈이 더 멀어지고 있다.
일간스포츠는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과 한문도 연세대 정경대학원 교수·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 등 부동산 전문가 4명에게 '계묘년'을 맞아 새해 주택 매매 시장 전망 및 무주택자와 투자자들의 전략에 관해 물었다.
올해도 하락은 '계속'
1일 한국부동산원의 지난해 마지막 주간아파트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12월 넷째 주(26일 기준) 전국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전주(71.0)보다 낮은 70.2로 조사됐다. 부동산원이 2012년 7월 매매수급지수를 조사한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매매수급지수가 100 이하로 내려가면 시장에 집을 사려는 사람보다 팔려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전국 매매수급지수는 지난해 12월 첫째 주(99.2) 이래 1년째 기준선을 밑돌고 있다.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63.1으로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6대 광역시는 67.4, 지방은 74.9로 역대 최저 수준이다.
부동산 전문가 대부분은 2023년에도 국내 주택 시장이 고금리와 경기 침체와 맞물려 주택 시장이 전반적으로 하락세를 이어 갈 것으로 내다봤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새해에도 주택 매매 가격이 서울 3~4%, 수도권 4~5%, 지방 3~4% 하락으로 전국에서 3~4%가량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매매와 전세 모두 하락세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하락장은 지역과 관계없이 동조화 현상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도 비슷했다. 그는 "쉽게 예단할 수 없으나 23년 상반기까지 기준금리 인상이 이어지고 경기 위축 우려가 겹쳐, 주택 가격 하락이 지속할 것"이라며 "급매물 위주의 간헐적 거래만 연결되며 평년보다 저조한 주택 거래 양상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시장 상황을 더 어둡게 전망한 전문가도 있었다. 한문도 연세대 정경대학원 교수는 "정부의 규제 완화에 따라 일시적인 기술적 반등은 있을 수 있으나, 향후 3여 년간 수도권은 고점 대비 10~30% 수준에서 하락할 것이란 예상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고 있지만, 대중의 집값 불안은 계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전반적인 하락장은 이어지겠으나, 하락의 질적인 측면에서는 전년과 다소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라고 분석도 있었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한 해로 따진다면 하락세지만, 정부 차원에서 규제를 완화하면서 올해보다 거래 자체는 살아날 것으로 본다"며 "상반기에는 급매물 위주로 시세보다 하락 거래가 되고, 하반기에는 바닥을 다지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요 연구기관들도 올해 집값 하락을 예상했다. 주택산업연구원은 2023년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실거래가 기준)은 8.5%, 수도권 아파트값은 13.0%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건설산업연구원 역시 올해 전국 주택 가격 변동률을 2.5%로 전망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도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3~4%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경제침체·규제 완화 '변수'
전문가들은 주택 매매 시장의 하락세 속에서도 변수가 존재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글로벌 전체에 드리운 경기 침체 그림자와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은 부동산 시장의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함영진 랩장은 "올해는 1%대의 저조한 경제성장률이 전망된다. 물가에 연동된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있고, 아파트 입주물량은 2022년보다 증가하기 때문에 주택 수요 부재를 단기적으로 타개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박원갑 위원은 "(올해 부동산 시장에서) 금리보다 더 중요한 것이 경기 침체가 아닌가 싶다. 금리 인상은 어느 정도 예측이 되는 박스권에 있기 때문에 사실상 상수나 고정 변수에 더 가깝다"며 "하지만 경제성장률은 일부에서 1%대 성장을 예상하지만, 역성장 전망도 있어 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추가 금리 인상이 예상보다 넓은 보폭일 것으로 보는 전문가도 있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달 14일 종료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4.25~4.50%로 0.50%포인트 인상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제는 금리 인상 속도가 아니라 최종 금리를 어느 정도 수준으로 할지를 생각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며 "당분간 긴축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준은 이날 공개된 점도표(dot plot)에서 올해 기준금리를 5.1%로 제시했다. 점도표란 연준 위원들이 각자 금리 전망을 점으로 나타낸 표다. 이는 올해에 기준금리를 5.00~5.25%까지, 전년보다 0.75%포인트 더 올리겠다는 의사로 풀이된다. 한문도 교수는 "글로벌은 물론 우리나라도 인플레이션이 심각하고,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금리 인상 기조를 쉽게 바꾸지 못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 경착륙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집값이 추락하면서 고점에 매물을 사들인 영끌족이 사회 문제로 대두하고 있고, 전국 각지에 미분양 신축 주택이 쌓이고 있다. 건설 경기가 침체하면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험도 커지고 있다. 윤지해 수석연구원은 "점진적으로 규제를 풀던 정부가 경착륙 우려가 커지자 규제 완화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정책 대응이 굉장히 선제적"이라며 "규제 완화 속도와 정책 의지를 봤을 땐 연착륙으로 막을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무주택자, 집 사려면 하반기에
전문가들은 새해에는 가급적 집을 급하게 사기보다는 추이를 살펴볼 것을 권유했다. 만약 집을 사야 한다면, 하반기 이후 시세보다 저렴한 물건이나 신축 분양을 권했다. 그래야 실패도 적다는 것이다.
박원갑 위원은 "새해에 꼭 집을 장만해야겠다면 고점 대비 가격 메리트가 부각되는 급급매물이나 분양, 법원 경매까지 어떻게든 시세 대비 저렴하게 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반 개인이 저점 타이밍을 잡기 쉽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 싸게 사야 위험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박원갑 위원은 "만약 보수적으로 접근한다면 V자형 반등이 어려우므로 시간을 두고 바닥을 확인하고 매입해도 좋을 것이다. 어차피 타이밍은 잘 맞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싼 가격"이라고 덧붙였다.
윤지해 수석연구원은 "무주택자라면 시세보다 20~30% 낮은 수준의 신축을 분양받거나, 시장 급매물을 선택할 것을 추천한다"며 "주택 자산은 매입 뒤 2~3년 뒤 가치가 높아질 것인지를 봐야 한다. 현재 구축 급매와 시세가 비슷할지라도 신축 아파트가 유리하다"고 말했다.
함영진 랩장은 "유주택자보다는 무주택자 또는 실수요 위주로 주택시장에 접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무주택자는 분양시장 청약이 유효하다. 하지만 시중의 급매물 및 경매 등과 비교해 가성비를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고 덧붙였다.
주택 매매 시 주목해야 할 단지 특징을 꼽기도 했다. 기왕이면 전고점이었던 2021년 대비 하락 폭이 큰 곳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박원갑 위원은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가 갭투자를 하고, 영끌 수요가 몰렸던 대단지 랜드마크와 신축, 중소형이 낙폭이 크다"며 "소규모 단지는 가격 착시 현상이 생길 수 있어 권하지 않는다. 단독주택 토지 상가 등 비아파트는 이번 하락장에서는 메리트가 없다"고 말했다.
비교적 가격 하락이 큰 상급지는 이른바 갈아타기 수요에도 매력적인 곳으로 보고 있었다.
윤지해 수석연구원은 "유주택자 중 상급지로 갈아타려고 한다면, 조정기에 비교적 가격 하락세가 큰 송파와 강동 지역을 살펴볼 만하다. 고가 아파트 가격이 더 많이 내리기 때문이다"며 "다주택자나 임대 사업자는 저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대략적인 조언은 힘들다. 다만, 다주택자라면 그중에 미래 가치가 비교적 낮은 물건 일부를 효율적으로 정리하면서 절세 전략을 짜길 추천한다"고 말했다.
함영진 랩장은 "적어도 2023년 하반기까지 시장을 지켜볼 필요 있다. 고금리 및 경기 침체 시기에는 주택가격대비 자기 자금 비율 및 상환 가능한 수준에서의 여신(대출)비율이 더 중요하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