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프로배구 흥국생명은 "권순찬(48) 감독과 김여일 단장을 동시에 사퇴시키로 결정했다"고 2일 밝혔다. 2022년 4월 1일 흥국생명 신임 사령탑으로 부임한 권순찬 감독은 8개월 만에 팀을 떠난다.
사실상의 경질이다. 임형준 구단주는 "구단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부합하지 않아 부득이하게 권순찬 감독과 헤어지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 시즌 6위였던 흥국생명은 도드람 V리그 2022~23시즌에 승점 42(14승 4패)를 기록, 2위로 반환점을 통과했다. 선두 현대건설(승점 45)을 바짝 추격하며 1위 등극까지 노린다. 지난달 29일 현대건설과의 맞대결에서 세트 스코어 3-1로 승리하며 상승세를 타는 중에 권순찬 감독과의 작별을 알렸다.
흥국생명이 상승세 중에 사령탑을 교체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전임 박미희 감독이 8시즌 동안 장기 집권하기 전까지 흥국생명은 '감독들의 무덤'으로 통했다.
프로 원년 꼴찌였던 흥국생명은 2005~06시즌 도중 故 황현주 감독을 경질했다. 당시 흥국생명이 김연경과 황연주의 활약 속에 1위를 달리던 중이어서 더욱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우승 경험 있는 감독을 모신다는 이유로 김철용 전 여자 국가대표팀 감독을 모셔왔다. 흥국생명은 통합 우승을 차지했지만, 2006~07 시즌 개막 전에 김철용 감독을 선수단 관리 소홀 책임을 물어 경질했다. 대신 데려온 감독이 황현주 전 감독이었다. 황 감독은 2007~08 시즌 정규시즌을 이끌었고, 2008년 12월 말 부상 선수 관리와 선수 운영에서 구단과 이견을 보여 또 경질됐다. 이번에도 흥국생명은 7승 2패로 선두 질주 중에 황 감독을 쫓아냈다. 곧바로 이승현 세화여고 감독을 신임 사령탑으로 선임했지만, 72일 만에 또 사령탑이 바뀌었다. 이 감독이 성적 부진에 따른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함에 따라 한 시즌에만 무려 3명의 감독이 지휘봉을 이어받는 촌극이 벌어졌다. 이후 어창선 감독을 시작으로 사령탑 교체가 빈번하게 벌어졌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배구계는 흥국생명의 이번 결정에 의구심이 품고 바라보고 있다. 선두 현대건설을 바짝 추격하며 호시탐탐 선두를 넘볼 만큼 성적이나 팀 분위기가 좋은 상황이었다. 권순찬 감독과 선수단 내 불화가 있진 않았다. 주축 선수들도 갑작스러운 감독 해임에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평소 신중한 스타일의 권순찬 감독도 지난달 29일 현대건설을 3-1로 격파한 뒤 "1등을 꼭 하고 싶다"고 욕심을 드러냈다. 최근 세터 이원정을 트레이드 영입한 것도 권순찬 감독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전해진다. 정상만 바라보고 계속 팀을 운영한 셈이다.
임형준 구단주는 "권순찬 감독과 구단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부합하지 않았다"고 작별 이유를 설명했다. 구단 내부에서도 "선수 기용이나 경기 운영을 놓고 (구단과 감독의)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는 분위기를 전했다. 구단 관계자는 "(이번 시즌 절반 이상을 남겨둔 상황에서) 신임 사령탑 선임은 새 단장님이 오시면 더욱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누가 지휘봉을 새로 잡든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