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퍼스트 슬램덩크’ 속 샷클락은 30초다. 지금은 쓰지 않는 용어(인텐셔널 파울)도 나온다.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미 극장 입구에 있는 북산고 베스트5 입간판만 보고도 가슴이 두근두근했으니까.
고백하자면 나 역시 학창시절 슬램덩크에 열광했던 '3040 아재 세대'다. 슬램덩크가 지극히 좁은 범위의 특정 세대만 반응하는 컬트 작품이라고 폄훼해도 할 말은 없다. 그러나 극장에 있던 2시간 동안 진심으로 즐거웠다. 수업 시간 중 선생님 눈을 피해 소년챔프 신간 호를 몰래 읽었던 기억도 떠올랐고.
더 퍼스트 슬램덩크 최고의 장점은 움직임과 소리다. 내가 그토록 즐겁게 봤던 만화책이 눈앞에서 완벽한 비주얼로 펼쳐지는 감동이 있다. 그리고 그 생생한 소리. 농구화가 플로어 바닥에 끽, 끽, 하며 끌리는 소리나 농구공이 리드미컬하게 퉁퉁 튀는 소리가 괜히 벅찼다.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에서 표현된 여름 하늘의 뭉게구름이랄지 햇빛 속에 떠다니는 먼지 같은 일상의 장면이 유난히 더 아름다워 보이는 건, 이미 알고 있는 풍경인데도 애니메이션 속 그림으로 표현되면서 예술 작품이 됐기 때문이다. 알고 있는 풍경이 새삼 더 아름다워 보이는 느낌 말이다.
비유하자면 슬램덩크도 이와 비슷했다. 수백번도 넘게 본 농구 경기 장면이 역동적인 그림으로, 그것도 좋아하는 작가인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작화 느낌이 고스란히 들어간 채 펼쳐지는 것이 뭉클했다. 어린 송태섭이 골밑에서 일대일로 힘겹게 형을 밀고 들어가는 장면이나 강백호의 결승골이 아름다운 점프와 손목 스냅을 거쳐 골망을 철썩 흔드는 장면이라니. 그 흔한 농구의 한 장면이 가슴을 쿵쿵 울리면서 뭔가 말을 걸고 있었다. “농구 좋아하세요?”라고.
슬램덩크 극장판의 흥행 돌풍에 대해 혹자는 ‘90년대에는 가능했으나 지금은 촌스럽게 여겨져서 만들 수 없는 스토리, 잊고 있던 열혈 스토리를 일깨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역시 맞는 말인데, 내 느낌은 조금 달랐다. 대사를 거의 다 외울 정도로 열광했던 이 작품이 걸어오는 말은 이것이었다. 정말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기억하느냐고.
슬램덩크의 주인공 강백호를 다시 보니 30여년 전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스포츠 기자로 일하면서 새삼 다시 보인 건, 강백호가 스포츠에서 말하는 완벽한 멘털리티를 갖춘 선수라는 사실이다.
강백호는 타고난 체격과 운동능력을 갖추고도 한번 꽂히면 다른 건 아예 상관하지 않고 목표물만 향해 돌진하는 엄청난 집중력이 있다. 꼴 보기 싫어서 어쩔 줄 모르는 서태웅에게도 필요할 땐 배우고 협력한다. 산왕공고에 20점 넘게 끌려가는데도 안 감독의 턱살을 치며 하는 말은 “이봐, 영감님. 여기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나 하나인가?”이다.
선수생명을 위협할 만한 부상에도 “내 최고의 순간은 바로 지금”이라며 달려나가는 강백호의 모습은 머리에 붕대를 감고 이를 악문 채 뛰는 헝그리 정신 느낌과 좀 다르다. 오히려 지금을 즐기고, 누가 뭐래도 내가 최고이며, 나와 팀을 100% 믿는다는 긍정 에너지로 꽉 차 있다.
1990년대 작품이지만 슬램덩크가 전혀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건, 이런 재질의 완벽하면서도 유쾌한 주인공 때문이 아닐까. 그래, 넌 진짜 천재가 맞았구나.
나는 10대 시절의 나를 만나는 추억 여행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강백호의 저 에너지를 다시 만나 눈물 나게 반가웠다. 그리고 농구는 이렇게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확인을 한 게 찡했다. 한수 아래 서태웅이 완벽한 정우성을 꺾는 비결은 결국 동료에게 패스를 줄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 송태섭이 전면 압박 수비에 숨이 막힐 것처럼 고립돼 있을 때 그걸 뚫어주는 건 나를 믿고 달려나가는 동료라는 것, 이 아름다운 게임을 정말 사랑한다는 새삼스런 깨달음에 뭉클했다.
이 애니메이션은 진행되는 내내 나에게 묻고 있었다. “농구, 좋아하세요?” 그리고 이노우에 작가는 장난스럽게 ‘넌 이미 대답을 알고 있잖아?’라고 말하는 듯했다. 극장판엔 나오지 않지만, 슬램덩크 팬이라면 모두가 아는 그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