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부터 3040까지 ‘슬램덩크’에 푹 빠졌다. ‘슬램덩크’에서도 명경기로 손꼽히는 북산고와 산왕공고의 인터하이 32강전을 다룬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누적 관객 수 200만을 돌파하며 박스오피스를 장악한 것.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지난달 4일 박스오피스 2위로 첫 출발을 했다. 같은 시기 극장에서 함께 맞붙은 작품은 글로벌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영화 ‘아바타: 물의 길’과 윤제균 감독의 ‘영웅’ 등 굵직한 대작들. 이 사이에서 6만 2090명의 관객으로 박스오피스 2위를 기록하며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심상치 않은 시작을 보였다.
‘교섭’, ‘유령’ 등 설 연휴를 맞아 개봉한 한국 영화 기대작들 사이에서도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박스오피스 톱3에서 꾸준히 순위를 유지하던 이 작품은 마침내 개봉 4주차 주말에 처음으로 주말 박스오피스 정상에 이름을 새기며 역주행 진기록을 만들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이미 국내에서 개봉한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 흥행 톱5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달 25일 누적 관객 수 159만 명을 돌파, ‘너의 이름은’(2016),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2021),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2)에 이어 5위에 랭크됐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최종 관객 스코어는 216만명.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하루 평균 5만명 내외의 관객을 동원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하면 개봉 5주차 주말까지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만화책도 다시 강세다. 만화 출판사 대원씨아이에 따르면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개봉한 지난달 4일부터 1일 현재까지 ‘슬램덩크’의 신장재편판 판매 부수는 약 60만부에 달한다. 출판사 측은 내달 초면 100만부를 기록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원씨아이 관계자는 “(단행본을) 계속 찍고 있는데 수요를 다 못 맞추고 있다”며 “서점에 20만부씩 보내고 있는데도 동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슬램덩크’는 1990년 주간 소년 점프에서 연재되기 시작해 1996년 막을 내린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농구 만화로 국내에서도 1992년 발간돼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다. 극장가를 넘어 서점가에서까지 불고 있는 ‘슬램덩크’ 열풍은 연재가 종료된 지 25년여가 된 상태에서 일어난 것이라 그 의미가 더욱 크다.
굿즈 역시 인기 폭발이다. 수입사에서 개설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 공식 인스타그램에는 연일 굿즈의 수량과 가격 등을 묻는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 나왔다 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품절되기 일쑤라 유니폼의 경우 1인당 구매할 수 있는 수량을 5벌로 제한하고 있기도 하다.
기대를 모았던 한국 영화들이 연이어 주춤하는 사이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깜짝 흥행은 가물었던 극장에 단비가 되고 있다. 각 극장들은 ‘더 퍼스트 슬램덩크’ 관람객들을 위해 한정판 특전 등을 마련해 놓고 관객몰이에 힘쓰고 있다.
만화 전문 조경숙 평론가는 “‘슬램덩크’의 흥행은 과거에 ‘슬램덩크’를 향유해왔던 3040세대뿐 아니라 젊은 1020 여성 관객들의 영향도 크다고 본다”며 “‘슬램덩크’는 이전에도 밈 등으로 소비돼 왔기 때문에 젊은층에게도 낯선 작품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주인공을 가족을 잃은 송태섭으로 내세웠다는 점 역시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직접 이 작품의 각본을 맡아 북산고와 산왕공고의 인터하이 32강전을 원작과 다른 관점에서 그렸다. 이 과정에서 처음으로 형을 잃은 송태섭의 전사가 드러나 관객들을 뭉클하게 했다.
조 평론가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종전까지 주인공으로 여겨졌던 강백호가 아닌 가족을 상실한 송태섭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며 “이는 최근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와 공명하며 흥행에 더욱 힘을 보태고 있다고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