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출의 버팀목인 반도체가 연초부터 수렁에 빠졌다. 글로벌 메모리 1위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8조원 이상 증발한 것도 모자라 SK하이닉스는 10년 만에 분기 적자로 전환했다. 업계는 하반기 반등 시그널이 빗나가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투톱은 '어닝 쇼크'라는 표현이 모자랄 정도로 암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SK하이닉스는 2022년 4분기 영업손실 1조7012억원을 기록했다. 2012년 3분기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냈다. 지난해 연간 실적도 매출은 44조6481억원으로 전년 대비 소폭 올랐지만 영업이익은 7조66억원으로 43.5% 감소했다.
전날 확정실적을 발표한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은 가까스로 적자를 면했다. 4분기 영업이익이 2700억원으로 전년 동기의 8조8400억원에서 97% 급감했다. 적자를 기록한 2009년 1분기 이후 최악의 모습이다.
기록적인 다운사이클(하락세)을 나타냈던 2019년만큼이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SK하이닉스는 이날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직전 다운사이클과 유사하다. 공급사 측면까지 고려하면 업계 전반의 재고는 사상 최고 수준"이라고 했다. 특히 주 고객인 빅테크 기업의 서버 관련 제품은 스마트폰과 모바일 등 소비자 제품보다 재고 수준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특정 제품 카테고리가 아닌 전체 IT 시장의 위축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SK하이닉스는 "결국 (다운사이클) 이후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중요하다"며 "지금까지 스마트폰·PC 등 디바이스 기반으로 성장했다면, 앞으로는 기술·플랫폼·콘텐츠 등 데이터에 바탕을 둔 성장에 주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르면 연내 업황 개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SK하이닉스는 "고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반기는 조금 보수적으로 보는 게 사실"이라며 "그렇지만 하반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수요 모멘텀이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했다. 앞서 삼성전자도 하반기 수요 회복을 점친 바 있다.
SK하이닉스는 또 "올해와 내년을 데이터센터 장비의 리프레시 주기로 보고 있다"며 "신규 서버 CPU가 출시하면서 DDR5가 새로운 사업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존 DDR4 메모리는 재고 부담이 남아있지만, 차세대 제품인 DDR5는 오히려 물량이 부족하다.
회사는 지난 3분기에 발표한 대로 올해 투자 규모를 2022년 19조원 대비 50% 이상 줄이는 기조를 유지한다. 첨단 기술 개발 일정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생산량 증가에 일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에 반해 삼성전자는 투자 계획 축소나 감산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위기 속에서 초격차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경기 악화 우려로 재무 건전성을 최우선으로 두면서 작년 하반기부터 고객사의 재고 조정이 이어지고 있다"며 "당장의 실적에는 우호적이지 않지만 미래를 철저히 준비할 좋은 기회"라고 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는 향후 메모리 수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