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스포츠가 2023년 신년 시리즈로 '타격은 어쩔티비(feat.김태균)'를 연재합니다.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 중 하나로 꼽히는 김태균 해설위원이 연구한 야구, 특히 타격에 대한 이론·시각을 공유합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타격의 재미, 나아가 야구의 깊이를 독자들이 함께하길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앞서 설명한 대로 타격의 ‘벽’을 세워도 인사이드 피치를 공략하는 건 쉽지 않다. 게다가 몸쪽 깊이 박히는 빠른 공이라면 타자가 대응하기 정말 어렵다.
패스트볼은 0.4초 만에 홈플레이트를 통과한다. 공이 어느 코스를 향하든 그 시간은 같겠지만, 타자는 다르게 느낀다. 내 경험으로는 바깥쪽 공이 0.4초 만에 날아온다면, 몸쪽 공은 그 절반인 0.2초 만에 지나가는 느낌이다. 아마도 타자 눈에 가까워서, 사구에 대한 공포감이 생겨서 그런 것 같다.
정확하게 던진 인사이드 피치가 위력적인 이유는 이 때문이다. 타자들의 핫 앤드 콜드존(hot & cold zone)을 보면 몸쪽 공 타율이 3할 이상인 경우는 거의 없다. 강타자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어려워도 몸쪽 공에 대응해야 한다
그래도 타자는 어떻게든 인사이드 피치를 받아쳐야 한다. 몸쪽 공 타율이 2할 5푼이라도 되어야 한다. 또 가끔 홈런도 나와야 한다. 타자가 몸쪽 공에 속수무책이라면 투수는 그 코스로만 공을 던질 것이다.
몸쪽 공은 타자에게 가장 어려운 코스다. 이론적으로 몇 가지 해법이 있다. 가장 쉬운 게 타자가 뒤로 물러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스트라이크존 바깥쪽이 타자로부터 너무 멀어진다. 아웃사이드 피치를 사실상 포기하는 셈이다.
두 번째는 오픈 스탠스(open stance)다. 오른손 타자의 경우 앞발(왼발)을 유격수나 3루수 방향으로 향하게(몸 중심에서 뒤로 빼는)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타석에서 물러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오픈 스탠스를 한다고 해도 뒷발(오른발)은 홈플레이트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다. 두 다리가 모두 뒤로 빠지는 것보다는 낫지만, 오픈 스탠스를 해도 바깥쪽 공이 타자에게 불편한 건 사실이다.
극단적인 오픈 스탠스는 타격 코치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클로즈드 스탠스(closed stance)도 정석은 아니다. 이는 타자가 앞발을 닫아 2루수 쪽을 향하게 하는 자세다. 이 스탠스로는 바깥쪽 공 대처가 수월해지지만, 몸쪽 공 대응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타자가 앞발을 투수 방향으로 뻗어야 몸쪽과 바깥쪽을 다 공략할 수 있다. 또 체중 이동을 통한 추진력을 극대화하기에도 편하다. 테드 윌리엄스는 『타격의 과학』을 통해 “조 디마지오, 스탠 뮤지얼 등 내가 30년 동안 보아온 좋은 타자들의 90%는 공을 향해 똑바로 다리를 뻗었다. 그들의 스트라이드는 투수(투구 궤적)로부터 절대 10도 이상 벗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나도 윌리엄스의 말에 대체로 동의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스탠스를 그리 중요하기 생각하지 않는다. 이전 연재에서 설명한 지안카를로 스탠튼처럼 오픈 스탠스로도 바깥쪽 공을 잘 치는 타자도 있다. 자기 스타일대로 타격하면 된다.
가운데 공을 칠 때처럼 몸쪽 공을 때리면 정타를 만들기 쉽지 않다. 배트의 스위트 스폿(sweet spot)이 아닌 손잡이 부위에 맞기 십상이다. 이런 경우 배트가 부러질 수 있고, 손에 큰 충격이 전달돼 다음 타격에 지장을 주기도 한다.
나는 몸쪽 공을 치기 위해 힙턴을 이용했다. 두 팔꿈치를 상체에 최대한 붙인 채 몸을 회전하는 것이다.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아시아라운드 1위 결정전에서 일본 선발 이와쿠마 히사시로부터 결승타를 쳤을 때의 스윙이 그렇게 이뤄졌다.
인사이드 피치를 공략할 때 배팅 타이밍이 늦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땐 순간적으로 허리를 뒤로 젖히며 스윙했다. 상체가 뒤로 가면서, 늦은 히팅 포인트를 만회한다. 배꼽 근처에서 형성될 히팅 포인트가 앞발 근처로 바뀌는 것이다.
타자가 상체를 젖히면 힙턴의 회전축이 달라지는 효과도 있다. 보통의 경우 타자 허리의 회전축은 지면과 수평인 0도에 가깝다. 몸쪽 빠른 공(특히 높은 코스)을 공략할 때 순간적으로 오른 다리를 굽히고 허리를 젖히면 몸통의 회전축이 20~30도가 된다. 이렇게 되면 콘택트 존이 좁아지는 어려움이 있다. 대신 임팩트가 정확하다면 레벨 스윙을 해도 타구가 자연스럽게 뜨는 효과를 얻는다.
난 2012년 전후로 그런 타격을 했다. 그걸 보고 박병호 선수가 “어떻게 하면 그 스윙을 할 수 있느냐”고 여러 번 물어봤다. 난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해줬다. 이후 박병호 선수는 자기에게 맞는 스윙을 더 발전시켰다.
박병호 선수는 전성기 시절 나보다 허리를 더 많이 젖혔다. 때로는 거의 누워서 치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박병호가 시즌 50홈런 이상을 때린 2014~2015년 그런 스윙이 특히 많이 나왔다. 나보다 더 좋은 장타자가 된 것이다. 박병호 선수는 타격에 대해 고민하고,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묻는 자세가 남달랐다. 게다가 자신에게 맞게 응용도 잘해냈다. 정말 좋은 타자다.
박병호 선수가 히어로즈 시절 홈런을 많이 때렸을 때 종종 볼 수 있었던 장면. 몸쪽 빠른 공에 배팅 타이밍이 늦으면, 그는 순간적으로 상체를 뒤로 젖혔다. 이런 스윙은 공과 배트가 만나는 콘택트 존이 좁아진다. 대신 한 박자 늦은 타이밍을 만회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허리 회전축이 지면과 20~30도를 이루며 자연스럽게 타구 발사각이 올라가는 효과도 있다. 박병호 선수의 노력과 파워를 알 수 있는 타법이다. IS 포토
공포가 다가오면 은퇴도 가까워진다
몸쪽 공 타격은 고급 기술이다. 내 스윙도 처음부터 목표 지점이 있었던 건 아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만든 스윙이다. 이 타격에는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순발력이 따라줘야 한다.
내가 30대 중반 나이가 되자 그런 스윙을 더는 하기 어려워졌다. 순발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체력 저하다. 몸을 뒤로 젖히며 스윙하면 엄청난 허릿심이 필요하다. 젊을 땐 힘이 있어 가능했지만, 나중에는 그게 안 됐다. 예전 같으면 홈런이 될 타구가 외야수에게 잡혔다.
몸쪽 공 공략이 내 약점이 됐을 때, 그리고 내가 인사이드 피치를 의식했을 때 은퇴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투구가 점점 무서워지는 거다.
2017년 8월 11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대전경기였다. 나는 2회 투런 홈런을 때렸다. 스윙이 끝나는 순간 옆구리(복사근)에 통증을 느꼈다. 더그아웃으로 돌아와 내 상태를 말했더니 트레이너는 “경기에서 빠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난 “아니야. 살살 쳐 볼게”라며 5회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섰다. 결국 스윙하다가 근육이 더 크게 찢어졌다.
처음 통증을 느꼈을 때 교체됐다면 부상이 커지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괜히 무리했다가 일이 더 커졌다. 재활 치료 후 복귀까지 41일이나 걸렸다. 게다가 당시 타격감이 상당히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미련한 짓이었다.
복귀 후에도 트라우마가 남았다. 옆구리 근육이 한 번 찢어지니까 심리적으로 위축됐다. 난 힙턴을 강하게 하는 스타일인데 그러다 또 다칠 것 같았다. 조금만 피곤해도 옆구리가 아픈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내가 오랫동안 만들어온 타격 폼이 조금씩 무너졌다.
부상 다음 시즌부터도 2년 동안 타율 3할을 기록하긴 했다. 그러나 내 스윙은 무뎌졌다. 홈런이 2018년 10개, 2019년 6개로 줄었다. 몸쪽 공에 대처할 몸도, 스윙도 아니었던 거다. 인사이드 피치에 공포감을 느끼자 난 은퇴를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