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학폭 이력 문제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출전이 좌절된 안우진. 안우진은 지난해 3000구가 넘는 투구 수를 기록했는데 WBC에 나서지 못하면서 타이트한 일정을 피할 수 있게 됐다. IS 포토
3437구. 지난해 안우진(24·키움 히어로즈)이 프로야구 공식 경기에서 기록한 투구 수다.
안우진은 2022년 KBO리그 '히트 상품' 중 하나다. 정규시즌 30경기에 선발 등판, 15승 9패 평균자책점 2.11을 기록했다. 투수 2관왕(평균자책점·탈삼진)에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하며 강한 임팩트를 남겼다. 그런데 부상 없이 정규시즌을 완주했고 소속팀 키움이 한국시리즈(KS) 무대를 밟으면서 누적 투구 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지난해 안우진의 정규시즌 투구 수는 3003개였다. 외국인 투수 드류 루친스키(전 NC 다이노스·2974개) 알버트 수아레즈(삼성 라이온즈·2959개)에 앞선 리그 1위. 국내 투수가 정규시즌 3000구를 소화한 건 2017년 이후 5년 만이었다. 2021년 기록한 개인 한 시즌 최다 투구 수(종전 1867개)를 훌쩍 뛰어넘었다.
안우진은 또 포스트시즌(PS)에서 434구를 추가, 시즌 누적 투구 수가 3500구에 육박했다. KS 1차전 선발 투수로 나서서 오른 중지에 물집이 터지는 작지 않은 부상을 당했지만 시리즈 5차전에 복귀, 100구를 소화할 정도로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성공적인 1년을 보낸 만큼 '관리'가 오프시즌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특히 투구 수가 급격하게 늘어났다는 게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안우진의 최근 3년 투구 수는 579개→1867개→3003개다. 1999년생인 그의 나이를 고려하면 2008년 미국 메이저리그(MLB) 저명 칼럼니스트 톰 버두치가 주장한 '버두치 효과(Verducci Effect)'에 부합한다.
버두치는 '만 25세 이하 투수가 전년 대비 최소 30이닝을 더 던지면 부상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당시 MLB 투수들을 표본으로 검사하니 적중률이 80%가 넘는 것으로 확인돼 그의 이론에 힘이 실리기도 했다. 30이닝이 늘어난다는 건 그만큼 투구 수가 증가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안우진의 이닝은 90이닝 가깝게 증가했다.
키움 히어로즈와 SSG 랜더스가 7일 오후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2022 KBO리그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5차전 경기를 펼쳤다. 키움 선발 안우진(오른쪽)이 6회 2사 만루 위기를 극복한 뒤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면서 이정후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인천=정시종 기자
그런 면에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출전이 불발된 건 다른 의미에서 '기회'가 될 수 있다. 안우진은 고교 시절 저지른 학교 폭력(학폭) 이력 때문에 WBC 최종 엔트리에 승선하지 못했다. 그는 2018년 입단 당시 학폭 문제로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로부터 '3년 자격정지 처분'을 받아 대한체육회 규정에 따라 국가대표 선발 자격이 영구 박탈된 상태다. 이 징계로 대한체육회 산하 단체가 국가대표 선발을 관리하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을 뛸 수 없다. 대한체육회가 아닌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대표팀을 구성하는 WBC에는 출전이 가능했지만, 고심을 거듭한 KBO의 결론은 '불가'였다. 태극마크를 간절하게 원한 안우진의 희망도 꺾였다.
하지만 몸 상태를 추스를 시간을 벌었다. WBC에 출전한다면 3월 대회를 앞두고 이른 시점에 실전 투구를 소화해야 했다. 오프시즌 휴식이 짧다는 건 지난해 과부하가 걸린 안우진으로선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WBC를 마치면 프로야구 시범경기를 소화하고 곧바로 시즌 개막(4월 1일)을 맞이해야 한다.
한 구단 관계자는 "WBC에 주축 선수가 나가는 구단들은 부담을 느낀다. 자칫 부상이라도 당하면 시즌 전체 성적에 직격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라며 "안우진은 지난해 워낙 많은 공을 던졌기 때문에 WBC를 출전하지 않는 게 선수 개인으로선 아쉬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키움으로선 나쁘지 않은 소식"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