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항상 상대보다 작았어. 심지어 내가 페더급에서 뛸 때도 작았어. 하지만 옥타곤 위에서 상대가 날 마주하게 되면 달라지지. 내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넌 딱 10초면 알게 될거야. 옥타곤에서 내 사이즈는 중요하지 않아."
'코리안 좀비' 정찬성을 무너뜨렸던 '파운드 포 파운드 1위' (35·호주) 알렉산더 가 UFC 두 체급 동시 석권이라는 새 역사에 도전한다.
'파운드 포 파운드 1위' 알렉산더 볼카노프스키. AFP=연합뉴스
현 UFC 페더급 챔피언인 볼카노프스키는 오는 12일(한국시간) 호주 퍼스의 RAC 아레나에서 열리는 종합격투기 대회 UFC 284에서 현 라이트급 챔피언 이슬람 마카체프(32·러시아)와 맞붙는다.
경기는 라이트급 타이틀전으로 치러진다. 챔피언 마카체프가 자신의 챔피언 벨트를 걸고 싸운다. 한 체급 아래인 페더급 챔피언인 볼카노프스키는 명목상 도전자다. 만약 볼카노프스키가 마카체프를 꺾는다면 두 체급을 동시에 석권하는 역대 5번째 파이터가 된다.
지금까지 UFC 역사상 두 체급 이상 석권한 선수는 랜디 커투어(라이트헤비급/헤비급), BJ 펜(라이트급/웰터급), 코너 맥그리거(페더급/라이트급), 조르주 생 피에르(웰터급/미들급), 다니엘 코미어(라이트헤비급/헤비급), 헨리 세후도(플라이급/밴텀급), 아만다 누네즈(여성 밴텀급/페더급) 등 총 7명이 있었다. 이 가운데 맥그리거와 코미어, 세후도, 누네즈는 동시에 두 체급 타이틀을 보유했다.
볼카노프스키는 원래 체급인 페더급에서 상대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7월 맥스 할로웨이(미국)를 삼판 전원일치 판정승으로 누르고 22연승을 이어갔다. 지난해 3월에는 정찬성과 맞붙어 4라운드 TKO승을 거두기도 했다. 정찬성, 할로웨이, 브라이언 오르테가(미국) 등 페더급의 쟁쟁한 파이터들이 모두 도전했지만 볼카노프스키는 '넘사벽'이었다.
페더급에서 더이상 이룰게 없다고 생각해 결심한 것이 '체급 월장'이다, 페더급 타이틀을 유지한 채 위 체급인 라이트급 챔피언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누가 챔피언이라도 상관없이 도전할 마음이었다.
결국 마카체프가 지난해 10월 UFC 280 대회에서 열린 챔피언 결정전에서 찰스 올리베이라(브라질)를 2라운드 서브미션으로 제압하고 새 챔피언에 등극했다. 마카체프가 챔피언 벨트를 차지하자마자 볼카노프스키는 옥타곤에 올라와 도전 의사를 밝혔다. UFC는 곧바로 '챔피언 vs 챔피언' 빅매치를 공식 발표했다.
볼카노프스키는 UFC 전체 체급을 통틀어 순위를 매기는 '파운드 포 파운드' 1위를 달리고 있다. 이 순위 2위가 바로 마카체프다. 전 체급을 통틀어 가장 강하다고 손꼽히는 두 파이터가 맞붙는 것이다. 입장 수익이나 유료 TV 판매 등에서 역대급 기록이 나올 것으로 UFC는 기대하고 있다.
파운드 포 파운드 순위는 볼카노프스키가 앞선다. 하지만 실제 스포츠 도박사들이 전망하는 예상은 마카체프 쪽에 쏠린다. 대략적으로 마카체프의 승리 배당률은 -400인 반면 볼카노프스키는 +300 수준이다. -400은 100달러를 벌기 위해 400달러를 걸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만큼 마카체프의 승리 가능성을 크게 본다는 의미다. 반면 +300은 100달러를 걸면 300달러를 벌 수 있다는 뜻이다.
페더급을 완전히 지배한 최강 파이터임에도 이처럼 볼카노프스키가 평가 절하를 받는 이유는 마카체프가 그만큼 강한 파이터라는 의미다. 마카체프는 세계 최강 레슬러의 산실로 잘 알려진 러시아 영내 자치공화국 다게스탄 공화국 출신이다. UFC 최고 스타 코너 맥그리거를 무참히 꺾었던 하빕 누르마고메도프가 이곳 출신이다. 마카체프는 어릴적부터 누르마고메도프와 함께 레슬링을 배웠고 훈련했다.
볼카노프스키의 패배를 예상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먼저 UFC 두 체급 동시 챔피언에 등극했던 코미어다. 은퇴 후 현재 UFC 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인 코미어는 체격적인 열세를 극복하는게 쉽지 않다고 말한다. 볼카노프스키는 신장이 167cm인 반면 마카체프는 178cm로 11cm 차이가 난다. 물론 볼카노프스키는 페더급에서도 자신보다 큰 선수와 싸웠다. 하지만 라이트급에서도 강한 힘을 자랑하는 마카체프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코미어는 한 인터뷰에서 "볼카노프스키는 마카체프가 다루기 딱 좋은 체형이다. 그 정도 키로 마카체프를 상대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밑에 깔린 채 피니시를 당할 것이다"고 전망했다.
볼카노프스키의 패배를 예상하는 다른 전문가들도 신장과 체격의 열세를 지적한다. 페더급에선 작은 키를 폭발적인 파워와 순발력으로 메웠다. 하지만 라이트급에선 힘의 우위를 이용하기 힘들다. 게다가 마카체프는 누르마고메도프와 마찬가지로 월등한 레슬링 실력을 자랑한다. 볼카노프스키가 페더급에서 마카체프같은 극강의 레슬러와 상대해본 적이 없다는 것은 불리한 요소다.
볼카노프스키는 오랜만에 맛보는 언더독 평가를 오히려 즐기는 듯하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언더독이 된다는 것은 도전을 한다는 거다. 날 의심하는 놈들의 입을 닥치게 만들어 주겠다"면서 "체급을 올리고, 근육을 벌크업 하고, 테이크다운 디펜스를 향상시키는 노력 등을 통해 난 그전보다 두 배는 강해졌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오히려 져도 잃을 것이 없다는 편안함은 볼카노프스키의 또다른 강점이다. 그는 "내가 그에 대해 걱정해야 할 것보다 그가 날 걱정해야 할 것이 훨씬 많을 것이다"며 "내가 너무 쉬운 상대라고 과소평가하는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똑똑히 보여주겠다"고 큰소리쳤다.
몸과 몸이 직접 부딪히는 격투기는 이변의 스포츠다. 아무리 실력 차가 나더라도 러키 펀치 한 방에 누구라도 쓰러진다. 이미 격투기 팬들은 이미 지난해 웰터급과 미들급의 절대 강자였던 카마루 우스만, 이스라엘 아데산야가 처참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팬들은 더 기대하고 흥분한다.
강력한 레슬링을 갖춘 라이트급 챔피언 이슬람 마카체프. AFP=연합뉴스
경기는 마카체프의 레슬링과 볼카노프스키의 타격 싸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 마카체프가 볼카노프스키를 잡고 쓰러뜨린다면 승부가 일찍 기울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볼카노프스키가 레슬링에서 무너지지 않고 특기인 잽과 레그킥을 꽂을 수 있다면 반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
볼카노프스키는 과연 한 체급 높은 레슬링 괴물을 잡을 수 있을까. UFC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파이터를 꿈꾸는 볼카노프스키의 큰 도전이 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