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방탄소년단 소속사 하이브는 SM 창업자인 이수만 전 총괄프로듀서(이하 이수만)가 보유한 지분 14.8%(352만3420주)를 주당 12만원씩 약 4228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하이브는 SM의 최대 주주로 올라서게 된다. 아울러 하이브는 SM 소액 주주가 보유한 지분 공개매수에도 나설 예정이다.
이는 전날 오후 5시 하이브가 SM 지분 인수 추진 보도에 대한 한국거래소 조회공시 요구에 "당사는 SM 지분에 대한 공개매수 등 지분 인수와 관련한 사항을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데 이은 것이다. 하이브는 "현재 확정된 사항은 없다. 향후 이와 관련해 구체적인 사항이 확정되는 시점 또는 1개월 이내에 재공시하겠다"고 밝혔지만 바로 다음날 오전 이수만 지분을 인수해 SM 최대 주주가 됐다고 공표했다.
하이브 관계자에 따르면 하이브가 9일 공시 할 때만 해도, 이수만과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하 방시혁)의 주식양수도계약(SPA)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이후 이날 밤 양측의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계약이 체결됐다.
지난 7일 해외에서 귀국한 이수만은 8일 법률대리인 화우를 통해 SM의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과 전환 사채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접수한 데 이어 불과 하루만에 하이브에 자신의 지분을 넘기는 계약까지 숨가쁘게 진행했다.
앞서 지난 3일 SM 경영진은 미래전략 SM 3.0으로 이수만 퇴진을 공표했다. 이후 지난 7일 카카오와 손을 잡은 사실을 알렸다. 카카오가 SM 지분 9.05%를 확보해 2대 주주가 된다고 알린 것. 그렇지만 이수만과 하이브가 손을 잡으면서 단숨에 이를 제쳤다.
당초 하이브는 이수만이 지분을 시장에 내놓은 2020년부터 SM 인수에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K팝 산업의 개척자인 SM과 방탄소년단을 보유한 하이브가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이수만이 후발 주자인 하이브에 지분을 매각할 뜻이 없었기에, 하이브는 협상 테이블에 오르지는 못했다. 이수만은 CJ, 카카오 등과 지분 매각 협상을 해왔지만 여러 조건에 대한 이견으로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상황이 급변한 건, SM 경영진이 이수만 퇴진을 공표하면서다. SM 경영진은 지난해 초부터 SM 지분 약 1%를 보유한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가 이수만이 보유한 라이크기획과 SM 계약이 부적절하다며 문제를 제기하자 고심 끝에 지난해 12월을 끝으로 라이크기획과 계약을 해지했다. 이 과정에서 이수만은 SM 경영진이 얼라인에 끌려간다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지난 2월3일 이성수 탁영준 SM공동대표가 미래비전 SM 3.0을 알리면서 이수만 퇴진을 공표한 데 이어 카카오의 SM 지분 인수가 알려지자, 이수만은 급히 귀국해 일련의 일들을 진행했다.
이와 관련해 하이브는 방시혁이 이수만이 올 초 선포한 ‘Humanity and Sustainability’ 캠페인에 깊은 공감을 표하며, 당시 일련의 사태로 칩거하며 고심 중이던 그에게 지속가능한 K팝 영향력 활용을 함께 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고 설명했다. 이수만이 먼저 방시혁에게 손을 내민 게 아니라, 방시혁이 먼저 이수만에게 제안을 한 것이라고 설명한 것.
SM 최대 주주였던 이수만의 지분율은 18.46%로, 이번 지분 매각 이후에도 3.66%의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방시혁은 이번 계약에 이수만을 최대한 예우하고 있다. 하이브는 아예 방시혁이 평소 "하이브가 이수만 선배님께서 개척하고 닦아오신 길에 레드카펫을 깔아주셔서 꽃길만 걸었다고 존경을 표명해왔다"고 공식입장에 적었다.
또한 하이브는 전날 얼라인이 공표한 "이번 합의 과정에서 (이수만이 보유한)라이크기획과 SM엔터테인먼트 간 계약 종료일부터 3년간 일몰조항에 따라 일부 수수료가 이 전 총괄에게 지급되는 내용을, 지급받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이는 하이브가 이수만의 백기사로 나선다는 게 알려지자 지난 9일 얼라인이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가 사실상 아무런 용역에 대한 의무 없이 기존 발매된 음반음원 수익에 대해 2092년까지 로열티 6%, 2025년말까지는 매니지먼트 수익에 대해서도 로열티 3%를 수취하도록 돼 있다”고 공표한 것에 대한 대응으로 보인다. 얼라인은 이 약정이 그대로 이행되면 첫 3년간은 이수만이 400억원 이상, 향후 10년간은 500억원 이상을 로열티 명목으로 받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하이브는 "이수만이 SM엔터테인먼트의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차원에서 지급받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또한 하이브는 이수만이 하이브가 이수만 보유 지분 인수가와 동일한 가격에 소액주주 지분을 공개매수하기도 한 것도 적극 찬성했다고 소개했다. 하이브는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는 자신이 누리게 될 경영권 프리미엄을 소액주주들과 공유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번 공개매수를 진행하는 것에 대해 적극 찬성했다"고 전했다.
한편 이수만과 하이브가 손을 잡으면서, 하이브는 K팝 라이벌로 급부상 중인 카카오엔터테인먼트를 견제할 수 있는 포석을 깔게 됐다. 업계에선 카카오가 SM 지분 9.05%를 인수한 게,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사우디로부터 투자받은 1조 2000억원의 잔금이 아직 들어오지 않아 직접 움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카카오가 지분 인수를 공표하면서 카카오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SM 삼사가 협력관계를 갖기로 했다고 밝힌 게 그 때문이라고 봤다.
하이브로선 이번 이수만 SM 지분 인수로, 상장을 앞둔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SM과 손잡는 걸 견제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다만 하이브와 이수만이 손을 잡은 데 대해 SM경영진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 3월말로 예정된 SM주주총회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업계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성수 탁영준 SM 공동대표를 비롯한 경영진(센터장 이상 상위직책자 25인)은 이날 새벽 "우리는 하이브를 포함한 외부의 모든 적대적 M&A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SM은 특정 주주,세력에 의한 사유화에 반대하며, 건전하고 투명한 지배구조를 확립하고 주주 권리 보호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라고 강경 입장을 전했다. 또 "카카오와의 전략적 제휴는 SM 3.0 전략의 실행을 가속화하기 위한 회사의 의사결정에 따른 것으로 최대주주 측이 주장하는 경영권 분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현 SM 이사회는 이사 4명의 임기가 모두 3월 끝이 난다. 이중 이성수,탁영준 SM 공동대표와 박준영 최고운영책임자 등 사내이사 3명이 이번 이수만 퇴진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일한 사외이사인 지창훈 전 대한항공 사장은 이수만의 고등학교 동문이다.
SM은 이번 주주총회에서 이창환 얼라인 대표를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하고 3명의 신임 사외이사도 추가한다는 방침인 반면 이수만 측은 현 공동대표 연임을 반대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이브가 이수만과 손을 잡은데 이어 소액주주 지분 공개매수까지 나섰기에, 이번 주주총회는 하이브와 이수만 대 SM 현 경영진 및 얼라인, 그리고 카카오의 대결 구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과연 SM을 둘러싼 머니게임이 어떻게 전개될지, 시장과 팬들의 관심이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