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스포츠가 2023년 신년 시리즈로 '타격은 어쩔티비(feat.김태균)'를 연재합니다.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 중 하나로 꼽히는 김태균 해설위원이 연구한 야구, 특히 타격에 대한 이론·시각을 공유합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타격의 재미, 나아가 야구의 깊이를 독자들이 함께하길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타자의 스윙은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나는가? 참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론치 포지션에서 임팩트까지 잘 왔다면 타자로서 임무는 거의 끝난 것이다.
그렇다고 타격이 완료된 건 아니다. 방망이는 임팩트 후에도, 공이 발사된 후에도 앞으로 뻗어간다. 이 과정을 폴로스루(follow through)라고 한다. 시간상으로 보면 폴로스루는 임팩트 이후의 동작이다. 타자가 의식적으로 이 동작을 수정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폴로스루는 연구대상이다. 그걸 만드는 과정이 타격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임팩트 후 배트와 공은 15㎝ 이상 붙어서 이동한다. 즉 폴로스루도 스윙 궤적(path)에 포함된다. 그래서 중요하다.
문대느냐, 때리느냐
선수들은 타자들의 유형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한다. ‘문대는 타자’와 ‘때리는 타자’다.
문댄다는 어감이 썩 좋지 않다. 과거 감독님이나 코치님들은 이 단어를 부정적인 뉘앙스로 썼다. ‘제대로 때리지 못한다’는 뜻을 담았다.
내 생각은 다르다. 잘 문댄다는 건 콘택트 존이 넓다는 의미다. 코스를 가리지 않고 어느 공이든 배트에 맞히는 걸 선수들은 문댄다고 표현한다. 이전 연재에서 설명한 인 앤드 아웃 스윙도 배트를 타자 몸에서 바깥으로 밀어내는 메커니즘이기 때문에 문대는 것처럼 보인다.
KBO리그 최고의 타자로 성장한 이정후 선수(키움 히어로즈)가 고타율을 유지하는 비결 중 하나가 바로 ‘문대는 타격’이다.
이정후 선수는 론치 포지션에서 임팩트까지의 거리를 짧게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리고 어떤 투구에도 대응할 수 있는 스윙 궤적을 만든다. 자기가 예측한 것보다 공이 조금 늦거나 빠르게 날아와도 어떻게든 배트에 갖다 댄다. 2022년 정규시즌에서 이정후 선수의 헛스윙%가 3.0(KBO리그 2위)에 불과했던 비결이다.
이정후 선수는 히팅 포인트를 최대한 많이 만든다. 타이밍이 다소 늦어도 스윙 궤적이 어느새 피칭 궤적과 만난다. 반대로 타이밍이 빠른 경우에는 (왼손 타자의) 오른손을 앞으로 길게 뻗어내며 스윙의 결을 만든다.
요약하면 ‘짧게 나와서 길게 내뻗는’ 느낌이다. 이런 스윙은 공과 배트가 만나는 구간이 길어서 정확성이 높다. 다만 힘을 모았다가 폭발하기 어렵기 때문에 파워가 분산되는 약점이 있다.
그런데 지난 4년 동안 이정후 선수의 홈런은 6개→15개→7개→23개로 증가했다. 그의 두 팔은 정확성을 높이는 데 여전히 최적화돼 있다. 여기에 허리와 엉덩이 회전력을 키워 장타력까지 향상했다. 두 가지를 다 잘하기 쉽지 않은데 이정후 선수는 정말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 또 그걸 이뤄내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다고 들었다.
이런 유형의 타자 중에는 2014~2015년 KBO리그에서 뛴 외국인 선수 야마이코 나바로도 있었다. 두 시즌 동안 79홈런을 터뜨린 그는 정말 ‘세게 문대는’ 타자였다. 엄청난 근력과 탄력으로 만든 에너지를 긴 스윙 궤적에 실어 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파워가 자신 있었기 때문에 나바로는 콘택트 존을 넓히려고 시도한 것 같다.
‘문대는 타격’과 반대되는 개념이 ‘때리는 타격’이다. 임팩트 순간 손목을 활용해서 강한 타구를 만드는 것이다. 선수 시절 내 스윙이 여기에 속했다.
‘때리는 타격’은 앞서 설명한 ‘나이키 스윙’과 관계가 있다. 타구에 스핀을 주려면 공을 문대기만 해서는 어렵다. 임팩트 순간 (오른손 타자는 오른쪽) 손목 힘을 활용해야 타구에 회전을 만들 수 있다. 이승엽 선배가 선수 시절 임팩트 때 손목을 정말 잘 썼다.
과거 어떤 코치님들은 “빨래를 짜듯 손목을 많이 써라” “오른손목이 하늘을 향하도록 덮어라”고 말씀하셨다. 이 방법은 스핀을 만드는 데 유용하다. 그러나 손목 힘을 너무 많이 쓰면, 손목을 비트는 순간에 힘이 집중돼 콘택트 존이 좁아지는 문제가 있다.
난 ‘때리는 타격’을 했지만, 손목을 많이 쓴 편이 아니었다. 자연스러운 스윙 궤적을 만들다가 임팩트 순간 오른손으로 배트를 ‘잡아주는’ 느낌으로 힘을 주었다. 말처럼 쉬운 게 아니지만, 반복훈련으로 내 스윙을 만들었다.
한 손이냐, 두 손이냐
찰리 로와 테드 윌리엄스는 폴로스루에 대한 견해도 다르다.
로는 ‘한 손 스윙’을 강조했다. 배트를 두 손으로 꽉 잡고 휘두를 때의 회전 반경을 생각해 보자. 타자의 팔과 배트가 원의 반지름을 이룰 것이다. 로는 이 회전을 크게 만드는 게 좋다고 주장했다.
로는 임팩트 후 (오른손 타자의) 오른손을 방망이에서 떼라고 조언했다. 그러면 배트를 왼팔이 쭉 펴지면서 스윙의 회전 반경이 커진다. 이런 스윙은 궤적을 평평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히팅 포인트를 더 많이 만들 수 있다.
이런 타격은 스윙 스피드도 더 빠르다고 로는 주장했다. 또 타구에 역회전을 만들어 비거리를 늘릴 수 있다고도 했다. 로의 설명만 들으면 ‘한 손 스윙’이 정답 같다.
윌리엄스는 다르게 말했다. 임팩트 구간에서 두 손을 감으라(rolling, 오른손 타자의 오른손을 비틀라)고 했다. 윌리엄스는 ‘양손 스윙’을 강조한 것이다.
사실 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 한 손을 놓느냐, 두 손으로 치느냐는 선택은 상황에 따라 달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임팩트할 때 양손을 다 썼다. 배트를 오른손으로 ‘잡아 준다’는 느낌으로 ‘깎아 올려치기’를 했다. 그래야 하체로부터 만든 추진력‧회전력을 양손으로 전달하고, 그 에너지를 배트에 충분히 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피칭과 스윙의 타이밍이 잘 맞았을 땐 ‘양손 스윙’이 이상적인 것 같다. 그러나 타이밍이 항상 잘 맞을 순 없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스윙 타이밍이 빨랐을 때, 예를 들면 패스트볼이 아니라 변화구가 날아올 땐 달리 대응해야 한다. 이미 스윙을 시작했는데 공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앞에 있다면 한 손(오른손 타자의 오른손)을 놔야 한다. 배트를 던지듯 앞으로 쭉 밀어내야 스윙 궤적이 커져 공을 맞힐 수 있다. 물론 이 경우 타구에 힘이 충분히 실리지는 않을 것이다.
가끔 좋은 타이밍으로 타격할 때도 한 손을 놓는 경우가 있다. 스윙의 가속도를 높이기 위해서 그럴 때 그렇다. 그러나 이 스윙을 잘 보면, 임팩트가 이미 끝났다. 힘이 충분히 실린 상태에서는 한 손을 놓아도 상관없다. 발레를 해도 괜찮다.
타자가 하체로부터 만든 에너지를 타구에 전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 손 스윙’을 지나치게 강조하느라 공을 배트에 맞히기도 전에 손을 떼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게 치면 강한 타구를 절대 만들 수 없다. 공을 배트 중심에 맞혀도 투구의 힘을 이겨내지 못해 (오른손 타자라면 1루 쪽) 파울이 된다.
그렇다면 ‘한 손 스윙’은 틀린 이론일까? 아니다. 스트라이크존 몸쪽으로 꽉 찬 공을 때릴 때 양손을 다 쓰면 스윙 궤적이 작아져 (오른손 타자라면 3루쪽) 파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인사이드 피치에 대응할 때는 임팩트 구간에서 한 손을 놓고 허리를 강하게 돌려야 한다. 양손의 힘을 충분히 이용하지 못하더라도 한 손의 힘만으로 강한 인플레이 타구를 만들 수 있다. 타이밍이 완벽하다면 홈런도 칠 수 있다.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아시아라운드 1위 결정전을 또다시 떠올려 보자. 당시 난 4회 볼카운트 0볼-1스트라이크에서 일본 선발 투수 이와쿠마 히사시가 던진 몸쪽 공을 받아쳐 좌익선상 적시타를 때려냈다. 대표팀을 1-0 승리로 이끈, 내 야구 인생 최고의 타구였다.
바로 직전까지는 쉽지 않았다. 이 안타에 앞서 내가 친 공은 3루 쪽 파울이었다. 몸쪽을 파고든 이 공을 ‘양손 스윙’으로 타격했는데 방망이의 회전 반경이 크지 않았다. 그 궤적으로 아무리 정확히 맞혀도 3루 쪽 파울이 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공은 초구보다 낮고 깊게 날아왔다. 1구째보다 더 어려운 코스였는데 스윙 궤적을 바꿔 대응했다. 손목을 쓰지 않고 배트를 앞으로 밀어낸 덕분이었다. 내게는 그 어느 홈런보다 값진 안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