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렷한 이유도 없이 8년 동안이나 누군가를 기약 없이 사랑하게 된다면 그것은 사랑보다는 사고에 가깝다. 영화 ‘궁지에 몰린 쥐는 치즈 꿈을 꾼다’의 이마가세(나리타 료)가 그렇다. 일견 집요하게까지 보이는 이마가세의 사랑은 결국 쿄이치(오쿠라 타다요시 분)까지 말려들게 한다.
이 작품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로 유명한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첫 퀴어 영화다. 해야 할 것 같은 사랑과 맺고 싶은 관계 사이를 섬세하게 조망하는 이 영화는 ‘남자들의 로맨스’에 초점을 맞춘 BL(보이즈 러브)과 구분된다. 두 주인공을 남성이 아닌 남자와 여자로 치환하면 유키사다 감독의 전작들과 큰 차이가 없는 멜로다. 유키사다 감독은 ‘궁지에 몰린 쥐는 치즈 꿈을 꾼다’에서도 사랑에 빠진 인물들의 심리를 깊이 있게 탐미하며 관객들을 매혹한다.
영화는 이마가세가 대학교 선배인 쿄이치의 앞에 갑자기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오랜 시간 쿄이치를 짝사랑했던 이마가세는 우연히 그의 아내로부터 남편의 뒷조사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뒤 뒤를 밟고, 쿄이치가 회사 여직원과 불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게 된다.
쿄이치는 미지근한 남자다. 마치 불같은 사랑이 존재하는 세상은 알지도 못 한다는 것처럼 자신을 좋다고 하는 사람에게 쉽게 곁을 내주고 떠나간다고 하면 굳이 잡지 않는다. 딱히 아내를 사랑하는 것 같진 않지만 그렇다고 아내에게 상처를 주기는 싫은 쿄이치는 이마가세에게 자신의 불륜 사실을 비밀로 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마가세는 그 대가로 키스를 요구한다.
이마가세는 실은 대학생일 때부터 쿄이치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쿄이치의 손에 들린 담배가 되고 싶을 정도로 지독했던 사랑은 그 후로 8년여간 이어졌다. 고등학생 때 일찍이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걸 인지했던 이마가세와 달리 쿄이치는 이성애자라는 성정체성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은 상황. 두 사람의 기묘한 관계는 그렇게 시작된다.
물론 키스 한 번 했다고 이마가세가 쿄이치의 마음을 쉽게 얻을 수 있을 리 없다. 쿄이치는 여전히 누구에게든 여지를 내주는 사람이다. 가졌지만 가진 것 같지 않은 쿄이치를 바라보며 이마가세는 애를 태운다. 애매한 성정체성만큼이나 자신의 감정 역시 정확하게 바라보지 못 하는 쿄이치는 그저 자신이 이마가세를 불행하게 하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하지만 사랑이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사랑에 빠진다는 건 상대에게 말려들어가 결국 자신을 잃고, 상대에겐 모든 예외를 허용하게 되는 과정이다.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는 이마가세는 쿄이치를 위한 선택을 하고, 쿄이치 역시 한 번도 말려들어가지 않았던 감정에 자신을 맡기기로 한다.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이 “이마가세와 쿄이치 가운데 선택하라”고 하자 고민 없이 이마가세를 선택했다는 나리타 료. 유수의 영화제에서 인정 받은 연기력을 ‘궁지에 몰린 쥐는 치즈 꿈을 꾼다’에서도 유감없이 뽐낸다. 캐릭터에 맞게 확 바꾼 비주얼과 말투 탓에 알고 보지 않으면 초반엔 미처 이마가세가 나리타 료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 할 수도 있다.
이마가세의 리드에 맞춰 호흡하는 쿄이치는 일본의 인기 그룹 칸쟈니8 멤버 오쿠라 타다요시가 맡았다. 오쿠라는 나리타와 완전히 다른 온도와 속도로 두 사람의 절뚝이는 사랑을 완성한다. 다소 높은 수위의 베드신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