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소속팀 단장을 거론하면서 “아끼는 것에 대해 많이 배운 것 같다. 뭐든 줄이면서 팀을 운영하는 것을 지금 하고 있다.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고 비꼬듯 말한 감독. 그런데 이 행동에 대해 연맹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재정위원회를 열어 징계를 논의한다면 이건 리그의 품격을 엄중하게 생각하는 원칙적인 일일까, 혹은 웃지 못할 감정 싸움의 블랙코미디일까.
김승기 고양 캐롯 감독은 지난 10일 수원 KT와의 홈 경기를 앞두고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받았다. 캐롯이 구단 경영난으로 두 달 연속 선수단 급여가 밀린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캐롯 선수단의 급여 지급일은 매달 5일이지만, 2월 급여는 KT전이 열린 10일 오후에야 입금이 됐다.
프로농구 경기에서는 현장의 취재진이 경기 전 홈팀과 원정팀 라커룸에 차례로 들어가서 감독과 간단한 인터뷰를 한다. 라커룸 인터뷰는 경기 후 인터뷰실에서 열리는 공식 인터뷰보다는 좀 더 가벼운 분위기에서 진행되곤 한다.
김승기 감독은 라커에서 기자들과 구단의 어려운 현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힘들겠다는 위로 성격의 말이 나오자 “인삼공사(KGC) 때가 더 힘들었다”며 말을 이어간 게 ‘비방 발언’의 맥락이다.
한국프로농구연맹(KBL)은 13일 오후 “김승기 감독이 특정 구단을 향해 비방 행위를 한 사안을 심의한다”며 14일 오전 재정위원회를 연다고 밝혔다.
재정위원회가 열리게 된 건 KGC 구단이 직접 KBL에 공문을 보내 김승기 감독의 당시 발언을 문제삼았기 때문이다.
심판 판정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며 리그를 비난하는 행위로 벌금 등 징계를 받은 지도자는 여럿 있었지만, 특정 단장에 대한 발언으로 재정위원회가 열리는 건 사례를 찾기 어려운 희귀한 에피소드다.
김승기 감독이 ‘비방’한 인물은 현직 KGC 단장이 아니다. 이 인물은 2022년 5월 인사에서 농구단을 떠났다. 이 전임 단장은 KGC 감독 시절의 김승기 감독과 갈등이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장이 부임 후 선수단 식비를 줄여 김 감독이 크게 반발하기도 했고, 2020년 김 감독이 경기 중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가 재정위원회에 출석했을 때 재정위에 구단 직원을 아무도 보내지 않고 감독만 가게 해서 ‘소속 감독 징계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는 뒷말을 낳기도 했다.
결국 김승기 감독은 KGC에서 우승을 하고도 1년 후에 캐롯으로 팀을 옮겼다. 그 배경에는 전임 단장과의 갈등이 있다는 말이 나왔다. 이 인사는 팬들의 반발을 산 적도 있다. KGC가 우승 후에도 큰 투자를 하지 않았고, 핵심 선수들을 잡지 못한 채 차례로 내보내면서 전임 단장을 겨냥한 팬들의 트럭 시위가 벌어졌다.
프로 스포츠에서는 특정 인물 간의 앙숙 관계가 팬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건은 치열한 승부를 벌이는 앙숙 간의 신경전은 아니다. 과거 구단 안에서 있었던 감정 싸움에 재정위원회를 이용한 꼴이다. 다소 경솔했던 김승기 감독의 발언에 대해 현재 1위 구단은 과연 품격 있는 대응을 한 걸까. 똑같은 수준의 감정 싸움으로 맞서면 구단 이미지에도 좋은 영향이 갈 리 없다. 한때 한솥밥 먹던 감독과 헤어지고 나서도 구단은 재정위원회 열어서 끝까지 간다는 프로농구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풍성해졌을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