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영화가 삶을 바꿀 때가 있다. 배우 유연석도 영화 ‘멍뭉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바꿨다. 유기견인 리타를 입양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유연석은 “유기견 입양을 결정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며 “영화를 찍으면서 유기견 이야기를 다루다보니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진돗개 이상 중대형견은 입양이 잘 안 돼서 ‘큰 아이로 입양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영화 촬영이 끝나고 SNS로 유기견 보호소 사진을 틈틈이 보고 있었어요. 그러다 눈에 들어오는 한 아이가 있었는데, 제가 정말 키울 수 있는 상황인지 고민하다가 입양을 결정하게 됐어요. 제가 배우라는 건 밝히지 않고, 입양신청서를 내고 답변을 기다리며 몇 개월에 걸쳐서 정식 절차를 밟았어요. 그렇게 반려견 ‘리타’가 가족이 됐어요.” 리타는 중대형 믹스견이다.
유연석이 말한 것 같이, ‘멍뭉이’는 유기견 문제를 덤덤하게 그린다. 반려견 ‘루니’를 키우는 주인공 민수(유연석)는 오랫동안 만나온 여자친구에게 프로포즈를 하지만, 여자친구가 개 침 알러지로 몰래 약을 먹어가며 자신을 만나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민수는 사촌형 진국(차태현)의 도움을 받아 루니를 돌봐줄 새로운 가족을 찾기 시작한다.
유연석은 반려동물을 기르며 마주치는 ‘현실적 문제’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짚었다. 유연석 역시 여러 번의 파양으로 상처를 입은 리타를 입양하고 이런 ‘현실적 문제’를 돌파해나갔다. 그는 “스스로 ‘촬영하면서 리타를 돌볼 수 있어?’ ‘어떻게 돌볼 건데?’라는 질문을 던지며 검증해봤다”며 “입양 전에 훈련사님 자문을 구하고, 동물병원에 물어보고, 강아지 유치원을 알아보는 과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리타는 보호소에서 상처를 받은 기억이 있어서 꼭 단독 입양만 가능했어요. 트라우마가 심해서 다른 개들이랑 잘 친해지지 못하고, 피부병에 심장사상충까지 있었어요. 처음에 집에 데려올 때 반려동물 용품을 많이 준비했는데 그냥 구석에만 있더라고요. 산책도 안 나가려고 했고요. 훈련사님에게 배울 때 ‘유기견은 신뢰를 쌓는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냥 기다렸어요. 밥 주고, 배변을 해도 혼내지 않고 가만히 두니까 2주 후에 조금씩 돌아다니더라고요. 지금은 완전 날뛰어요. ‘산책가자!’하면 막 뛰어와서 날아들어요.”
유연석은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1500만명 이상 추정된다고 하는데, 처음 반려동물을 입양할 때 설레는 마음과 반대로 현실적인 딜레마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현실 문제로 (반려동물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있다. ‘멍뭉이’는 이런 현실에서 가족을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찾아가는 영화”라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 강아지를 계속 키웠어요. 이웃이 ‘새끼를 많이 낳았다’며 데려오는 경우도 있고, 떠돌아다니던 개를 데려오기도 했죠. 지금 본가에 있는 강아지도 파양된 믹스견을 어머니께서 데리고 오셨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반려동물에 관심이 갔고, 배우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했어요. ‘멍뭉이’로 유기견 문제에 한 분이라도 관심을 갖게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멍뭉이’를 연출한 김주환 감독의 진심도 유연석이 ‘멍뭉이’를 선택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유연석은 “김주환 감독님을 만났는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진심이 느껴졌다”며 “실제 기르던 강아지 루니에 대한 미안함으로 각본을 썼다고 하셨고, 거기서 진정성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주환 감독은 영화 ‘청년경찰’ 각본을 집필하며 반려견 루니와 레이를 통해 위안을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유연석이 꼽은 또다른 ‘찐 반려동물인’은 임순례 감독이다. 유연석이 리타를 입양할 때도 임순례 감독의 도움을 받았다. 수많은 입양 서류를 어떻게 작성하는지 몰라 동물보호단체 ‘카라’ 대표로 활동하던 임순례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임순례 감독은 지난달 개봉한 영화 ‘유령’에서 사진으로 등장한 고양이 ‘하나짱’을 기르고 있다.
그렇게 유연석은 자신의 삶을 바꿔 ‘리타’를 가족으로 맞아들였다. 리타가 가족이 된 지 2년차다. 유연석은 “퇴근할 때 반겨주는 가족이 있어서 의지가 된다”고 말한다.
“반려견을 키우다보면 ‘지금 내가 키우는 여건보다 더 좋은 환경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멍뭉이’에서 민수가 한 생각이었고요.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좋은 환경이 정말 행복인걸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죠. 결국엔 가족이 어떤 상황이건 함께해야 한다는 의미를 주는 것 같습니다.”
유연석은 끝으로 “분명히 작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스스로가 먼저 변화했으니, 그 말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