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는 2월 내내 '배구 여제' 김연경(35·흥국생명)의 은퇴설로 뜨거웠다. 그는 지난 15일 출전한 페퍼저축은행전전 팀 승리를 이끈 뒤 "고민 중인 게 사실이고, 가장 높은 자리에 있을 때 물러나는 게 좋을 것 같다"라고 했다.
김연경은 선수 생활 연장 여지도 남겨뒀다. 생각을 정리 중이고, 구단·협회와도 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은퇴 여부에 관해서는 "올 시즌이 끝나기 전에 밝히겠다"고 했다.
이후 흥국생명의 경기는 승패보다 김연경의 은퇴 발표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그의 은퇴를 반대하는 배구 팬의 아우성도 쏟아졌다.
이슈 당사자인 김연경도 이런 상황이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23일 한국도로공사(도로공사)전이 끝난 뒤 관련 물음이 나오자 "내 은퇴 여부와 관련해 너무 많은 말이 나온다. 그 얘기는 더 안 했으면 좋겠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도로공사전은 지난 19일 선임이 발표된 마르첼로 아본단자 신임 흥국생명 감독의 V리그 데뷔전이었다. 새 사령탑의 운영 전략이나 비전에 관심이 쏠렸어야 할 경기에 자신의 은퇴 결정 여부가 더 주목받고, 코트 안팎에서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당분간 언급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로 선을 그은 것이다.
이미 은퇴를 결정했어도, 흥국생명의 남은 정규리그와 포스트시즌 경기는 출전한다. 김연경은 눈앞 순위 경쟁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일단 이번 시즌을 잘 마무리하는 게 중요하다. 새 감독님(아본단자)이 오셨고, 팀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 꼭 우승하고 싶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흥국생명은 27일 기준으로 승점 70(23승 8패)을 마크하며 2위 현대건설(22승 9패)에 6 앞선 1위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GS칼텍스를 만난 26일 6라운드 첫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2-3으로 패하며 주춤했다. GS칼텍스는 올 시즌 앞선 5경기에서 2패(3승)를 당하며 고전했던 상대. 시즌 6번째 승부는 유럽 무대에서 지도력을 인정받은 아본단자 감독이 지휘했지만, 경기력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새 감독이 며칠 만에 팀을 바꿀 순 없다.
반면 현대건설은 25일 치른 IBK기업은행전에서 풀세트 끝에 승리하며 5연패를 끊었다. 리그 넘버원 미들 블로커 양효진이 블로킹만 8개를 기록하며 팀의 대들보다운 경기력을 보여줬다. 현대건설은 올 시즌 개막 15연승을 거둔 팀이다.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5라운드 내내 고전했지만 저력이 있는 팀이다.
마침 흥국생명과 현대건설은 정규리그 최종전(3월 19일)에서 만난다. 그전에 두 팀의 승점 차가 1~2로 좁혀지면, 마지막 승부 결과에 따라 우승팀이 바뀔 수 있다. 3위를 두고 경쟁 중인 한국도로공사·KGC인삼공사·IBK기업은행도 6라운드에 총력전으로 나선다. 매 경기 어려운 승부가 불가피하다. 흥국생명의 1위 수성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우승 청부사' 김연경도 이런 판도를 잘 알고 있다. 자신의 거취, 은퇴 여부를 알리는 시기나 방식보다 좋은 경기력과 승리를 선사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는 "우승을 확정하기 전까지 가능한 많은 경기에서 이겨야 한다. 공교롭게도 시즌 최종전에서 현대건설과 붙는다. 그 전에 (우승을) 확정하면 좋을 것 같다. 동료들과 잘해볼 것"이라며 재차 각오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