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폼’이 아니라 ‘감’이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야구대표팀 중심타자 이정후(25‧키움 히어로즈)가 진짜 사냥에 나선다.
이정후는 6일 일본 오사카 교세라돔에서 열린 대표팀과 오릭스 버펄로스 공식 첫 평가전에서 3번 타자로 출전, 3회와 9회 안타를 때려냈다. 특유의 날카로운 타구는 나오지 않았지만, 한국 라인업에서 유일하게 멀티히트를 때렸다.
경기 후 이정후는 바뀐 타격폼을 몇% 정도 완성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는 “이제 (9일 호주전을 시작으로) 실전에 들어왔기 때문에 폼을 신경 쓰지 않겠다. 삼진당하지 않고 인플레이 타구를 만드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당연한 대답이다. 중요한 경기가 불과 사흘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폼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좋은 자세보다 좋은 타구를 만드는 게 중요한 시점이다.
이정후는 지난해 142경기에서 타율 0.349(553타수 193안타) 23홈런을 기록하는 등 타격 5관왕(타율, 출루율, 장타율, 타점, 안타)에 올랐다.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도 그의 몫이었다. 그런 그가 깜짝 선언을 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타격 폼을 바꾸겠다며 지난 1월 초 일찌감치 미국으로 떠난 것이다.
타격의 최정점에서 그가 모험을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올 시즌 뒤 메이저리그(MLB) 진출하려는 이정후는 시속 150~160㎞의 강속구를 때려내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 더 간결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 과정에서 선배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조언도 도움이 됐다.
이정후는 미국 애리조나 캠프에서 톱 포지션(배트를 잡은 두 손의 위치)을 낮췄다. 또한 하체 이동도 줄였다. 오픈 스탠스에서 이동발(좌타자의 오른발)을 당겼다가 앞으로 내딛는, 특유의 동작을 최소화했다.
지난달 미국에서 치른 평가전에서 그의 성적은 좋지 않았다. 당시 이정후는 “실전 감각이 부족하다. (새 폼으로)공을 맞히지도 못한다. (다른 선수들이 아닌) 내가 걱정”이라며 “한 번도 안 해봤던 자세다. 당연히 쉽게 적응하기 어렵다. 그래도 (수정을 반복하면서) 가장 편안한 폼을 찾았다”고 전했다.
폼 변화에는 적어도 수개월이 걸린다. 캠프에서 완성했다고 해도 시범경기를 치러야 어느 정도 답이 나온다. 그러나 이정후 앞에 WBC가 기다리고 있다. 자신의 새 폼을 가장 큰 무대에서 큰 선수들을 상대로 시험하게 됐다. 폼 변화에 집중하다가 자칫 원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6일 평가전 멀티 히트로 그런 우려를 어느 정도 잠재웠다.
이날 경기에 앞서 훈련에서 이정후는 최대한 간결한 자세로 타격하려 했다. 실전에서도 상하체 움직임이 작아진 것 같았으나, 미국 캠프에서 보여준 것만큼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 중간 단계가 이정후가 찾았다는 ‘편안한 폼’일지 모른다.
이정후의 인터뷰와 타격을 ‘훈련 모드’에서 ‘실전 모드’로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폼에 신경 쓰지 않겠다”는 그의 말에는 강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자신의 총이 아닌 목표물에 집중하겠다는 킬러 본능이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