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의 이정효 광주FC 감독은 지난 5일 FC서울전(0-2 패)을 마친 후 “아쉽기보다 솔직히 많이 분하다. 저렇게 축구하는 팀에 졌다는 것이 분하다.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 내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서울의 축구, 안익수 감독의 축구를 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자기 축구에 대한 자신감과 에고(EGO), 경기를 주도하다가 진 것에 관한 아쉬움이 묻어난 발언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논란이 일었다. 공개적으로 상대 팀과 감독을 ‘무시’하는 발언이 됐기 때문이다. 서울 팬들은 분노했고, 팬들도 이정효 감독의 다소 과한 언사를 지적했다.
서울 선수단도 보고만 있지 않았다. 광주전에서 두 번째 골을 넣은 박동진은 SNS(소셜미디어)에 “우리는 저렇게 축구해서 이겼다”고 받아쳤다. 임상협 역시 “일 년 동안 경기하면서 매번 좋은 경기를 할 수 없다. 오늘처럼 끈끈하게 버틴 선수들이 최고”라며 “프로는 결과로 말한다”는 뼈 있는 한 마디를 남겼다.
논란이 된 다음 날, 이정효 감독은 패배를 맛본 선수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함이었다며 사과했다. 사건은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이정효 감독의 발언이 다소 과했던 것도 사실이고, 서울 구성원들이 마뜩잖은 심기를 표출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분명한 것은 두 팀이 날 선 감정을 주고받으면서 K리그에 또 하나의 스토리가 쓰였다는 것이다.
‘트러블 메이커’가 된 이 감독은 사과했지만, 팬과 선수단은 이 발언을 기억하고 다음 맞대결에 더욱 전의를 불태울 것이 자명하다. 팬들 역시 두 팀의 다음 대결, 수장들의 말에 주목할 것이다.
이런 수위의 말이 오가는 것은 해외 스포츠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소위 잘나가는 스포츠 단체, 리그에서는 지도자와 선수들의 발언으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팬들은 열광한다. 감정을 주고받은 두 팀은 경기장에서 으르렁대며 쌓인 앙금을 푼다. 피 튀기게 싸우고 결과에 승복하면, 팬들은 박수를 보낸다.
한국 프로 스포츠에서는 지나치게 예의와 격식을 차리는 기조가 계속됐다. 그러나 올해는 여느 때와 확실히 다르다. 이제는 ‘솔직함’이 대세가 됐다.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의 발언이 시작점이다. 2023시즌 개막 전인 지난 1월 홍 감독은 전북 현대로 이적한 아마노 준을 향해 “최악의 일본 선수”라며 수위 높은 표현을 썼다. K리그 팬들이 아닌 이들도 이 사건을 주목했고, 이는 울산과 전북의 개막전 흥행으로 이어졌다. 물론 국적을 들먹인 것은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윤빛가람(수원FC)의 기자회견도 일례다. 지난달 동계 전지훈련 미디어캠프에 나선 윤빛가람은 수십 명의 취재진 앞에서 남기일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과의 갈등에 관해 이야기했다.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역시나 큰 주목을 받지 못했을 수원FC와 제주의 첫 경기도 ‘윤빛가람 더비’란 이름으로 팬들의 관심을 받았다.
스포츠는 선수와 감독, 구단과 구단의 얽힌 이야기가 있어야 흥미가 커진다. 이정효 감독의 발언은 과한 감이 있었지만, 어찌 보면 그의 솔직함 덕에 K리그와 광주 축구가 또 한 번 관심받는 계기가 됐다. 이제는 두 팀이 좋은 경기력으로 멋진 승부를 펼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