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콘텐츠에는 짧은 장면일지라도 그 안에 의미심장한 장치가 보석처럼 숨어 있습니다. 의도한 것이든, 의도하지 않은 것이든 이런 재미를 찾아보는 것이 바로 영상 콘텐츠의 매력입니다. 1초 만에 지나간 그 장면 속 의미를 짚어보고 깊이 있게 맛볼 수 있도록 ‘1초의 미장센’을 소개합니다.
화제의 드라마 ‘더 글로리’가 무수한 복선을 회수하기 위해 파트2로 돌아왔다. ‘더 글로리’의 묘미는 단순히 복수가 지닌 통쾌함에 머무르지 않고, 주인공 문동은(송혜교)의 행동 하나하나에 담긴 묵직한 ‘의미’를 찾는데 있다.
아주 오랜 세월동안 복수를 꿈꿔온 동은의 행적은 사소한 하나의 행적에도 나름대로의 뜻이 담겨 있다. 바둑을 좋아하는 것도 자신의 설계로 상대방의 ‘집’을 부수는 것이 마음에 든다는 동은이다. ‘더 글로리’ 파트1에서는 미심쩍게 보여졌던 동은의 ‘의도’가 파트2에서는 시원하게 드러난다.
문동은은 ‘더 글로리’ 1화부터 “용서는 없어. 그래서 그 어떤 영광도 없을 테지만”이라고 독백한다. 그렇게 굳세게 복수를 다짐한 동은이지만 단 한번, 박연진을 용서할까 흔들린 순간이 있다. 바로 하도영의 벗겨진 신발 때문이다.
‘더 글로리’ 파트2에서는 문동은이 박연진에게 모든 것을 자수하라며 자료를 준다. 그에게 복수를 실행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주는 기회다.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 같던 동은이 이런 기회를 연진에게 준 것은 하도영이 그의 집에 들어올 때 벗은 신발 때문이었다. 앞서 박연진과 하도영은 문동은의 집에서 마주치는데, 구두를 신고 들어온 박연진과는 달리 하도영은 구두를 벗고 집 안으로 들어온다. 문동은은 이 모든 상황을 홈 CCTV를 통해 지켜보고 있었다.
신발은 ‘더 글로리’의 메인 포스터에서도 등장하는 소재로, 드라마에서 동은에게는 ‘조력자’와 ‘가해자’를 가르는 중요한 의미다. ‘더 글로리’ 1화에서는 문동은이 박연진에게 주먹을 날리며 “넌 진짜 옛날 그대로다. 여전히 예의라곤 없네. 남의 집에 들어올 땐 신발은 벗어야지”라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도 가해자 연진은 도은의 공간에 침입하며 신발을 벗지 않고 들어온다.
어린 시절 동은을 괴롭히던 가해자들은 그의 단칸방에 찾아올 때도 신발을 벗지 않고 들어왔다. 개인에게 가장 소중하고 내밀한 공간인 ‘방’에 흙 뮫은 구둣발로 들어오는 것은 그의 인격을 모욕하는 일이다. 동은에게는 소중한 삶의 공간이, 가해자들에게는 신발을 벗은 작은 수고의 가치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동은을 좋아하는 주여정은 아예 자신의 ‘방’을 동은에게 내어준 사람이다. ‘더 글로리’ 파트2에서 동은은 여정의 집 거실에 자신의 텐트를 설치하는데, 여정은 이 텐트에 들어가면서도 곱게 슬리퍼를 벗어두고 들어간다. 그리고 동은은 증오에 찌들지 않은 따뜻한 방을 얻게 된다.
‘더 글로리’ 파트2는 그동안 미심쩍었던 등장인물의 행동에 개연성을 강하게 부여하며 마무리된다. 철저하게 회수될 ‘복선’을 한껏 느끼고 싶다면 ‘더 글로리’를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