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은 국제 경쟁력의 현저한 저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B조 1라운드 경기 9일 호주전 7-8 충격패에 이어 10일 일본전 4-13에서 참패를 당했다.
한국 투수들이 일본 타자들에게 난타를 당하면, 그들은 베이스에서 똑같은 세리머니를 했다. 두 손으로 빨래를 쥐어짜듯 하는 동작을 반복한 것이다. 오타니 쇼헤이(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라스 눗바(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물론, 일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완패하는 입장에서 상대의 세리머니는 죄다 거부감이 든다. 특히 일본 타자들의 동작은 마치 '상대를 짜내는' 또는 '상대를 갈아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호주전에서 한국 강백호의 황당한 '세리머니 아웃'과 연상돼 심리적 타격은 더 컸다.
일본 선수들이 보여준 건 '후추 그라인더 세리머니'다. 이는 눗바의 소속팀 세인트루이스 선수들이 점수를 내거나 홈런을 쳤을 때 하는 동작이다. 세인트루이스 포수 앤드류 니즈너가 제안한 이 세리머니는 승리를 위해 타석(개인)을 갈아넣자는 뜻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전을 대비한 건 아니고, 평가전때부터 했다.
일본 선수들은 일본계 미국인 눗바를 환영하는 의미로 이 세리머니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취재진은 "후추 그라인더 세리머니는 다 같이, 뜨겁게 하나로 뭉치자는 일본 대표팀의 약속"이라고 전했다. 그들은 한국을 상대로 끝까지 방심하지 않으며 압도적은 전력을 보여줬다.
세인트루이스 소속으로 이번 대표팀에 참가한 외야수 라스 눗바도 이날 한신전에서 같은 세리머니를 한 것으로 볼 때 그가 일본 대표팀에 전파한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미국에서도 화제가 되는 모양이다. 몇몇 팬들은 "올 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선수(FA)가 되는 오타니가 세인트루이스로 오려는 것 아니냐"며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다.
후추 그라인더 세리머니의 출발점인 눗바는 한국전에서 4타수 2안타(1타점 2득점)를 때렸고, 수비에서도 맹활약했다. 4타수 무안타에 그친 한국 대표팀이자 세인트루이스 동료 토미 에드먼보다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일본 팬들은 눗바에 열광하며 "미국에서 태어난 사무라이"라는 응원 문구를 도쿄돔에 관중석에 내걸었다.